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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2:10~20 “아브람의 거짓말”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2. 5.

[창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아브람이 거주하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브람은 이집트로 거류하기 위해 내려갔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 다가갔을때 아내 사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집트 사람들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를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이 부분은 어떤 면에서 의문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를 때 나이가 75세였다는 것을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이 부분은 참 이상해집니다. 아브람도 노인이고 사래도 노인입니다. 그런데 사래의 아름다움에 아브람이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사래가 나이를 초월하여 정말 미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아브람의 조상들의 나이를 보면 75세의 아브람은 노인이 아니라 청년에 해당 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래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의문들은 흥미로운 부분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아브람이 사래에게 한 말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남편으로써 부끄러운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인 줄 알지 못한 채 파라오의 눈에 들어 이집트의 궁에 불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게 됩니다. 

그때 아브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알 길은 없지만 그런 아브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저는 불편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아브람의 어리석은 선택 외에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그중에 하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아브람이 치졸하거나 옹졸하거나 자신의 생명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런 면이 있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오늘날로 치면 난민입니다. 기근 때문에 살기 위해 이집트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외국인이며, 난민 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입니다. 아브람이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낀 것은 난민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난민들이 있고 이주 노동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편견과 차별, 혐오의 정서가 우리 사회에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회적 약자는 정말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람이 경험한 두려움이 그런 것이었을 것이라 봅니다. 옹졸해 보이지만 아브람은 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아브람도 그렇고 당시의 사회도 건강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라는 커다란 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합니다. 왜 거짓말을 할까요? 보통은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아이들의 거짓말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아브람의 거짓말은 폭력이 낳은 산물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폭력은 약자에게로 흘러 들어갑니다. 

아브람의 옹졸해진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잠시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이 최근에 하셨던 거짓말은 무엇이며 왜 하셨습니까?
2. 상대방이 거짓말이나 핑계가 아닌 진실을 말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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