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4:21-24]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소돔왕이 아브람에 “사람은 내게 보내고 몰품은 네가 가지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람은 그 말에 “천재의 주제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람의 말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아브람은 전쟁에서 되찾은 소돔왕의 재물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 실 오라기 하나도
- 신발 끈 하나도 가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 아브람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재물들 때문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는 말하지 못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람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소돔왕과 아브람의 대화에서 짐작되는 것 중에 하나는 아브람이 되찾은 재물입니다. 그것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소돔은 롯의 눈에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았습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에는 부유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소돔이 그러한 도시였습니다.
동방의 네 왕들이 소돔을 약탈하고 빼앗아간 재물은 상당한 것이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아브람은 그런 제물을 되찾아오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재산의 소유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이미 개인군대를 거느릴 만큼 부자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발견한 것은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것,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것을 보면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언제나 생겼습니다.
아브람은 이미 부자였다 하더라도 소돔왕의 재물을 봤을 때 어찌 그것에 대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사람으로서 분명히 그 재물에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아브람에 세운 공로에 맞는 보상은 정당하고 당연한 것 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만큼의 보상을 생각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브람이 그렇게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쟁의 노략물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아브람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자존심 때문일까요?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볼 때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땅도 약속하셨고 자손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성취된다면 아브람은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복은 [בְּרָכָה(베라카)]로 번영의 결과로써의 복입니다. 아브람은 번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번영은 온전히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이 이루실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번영을 얻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왕의 재물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재물도 아니고 아브람이 차지할 명분도 있는 재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재물로 인해 아브람이 번영을 누리게 된다면 아브람의 번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아니라 가나안왕의 재물로 인한 것이라 평가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그것으로 인해 재물을 거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복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은 결정을 하기까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분별력을 키워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유혹인지에 대한 분별력입니다. 믿음이 이런 결정을 하게 한 바탕입니다. 만약 아브람이 재물을 붙잡고 고민했다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또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를 챙겼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신의 정의로움이나 자신의 채면, 자존심을 위해 어떤 손해를 감당할 때 함께한 연약한 사람들까지도 억지로 참여하게 하는 일들을 합니다.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재물을 거절했지만 함께한 다른 이들에게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아브람은 그 재물이 없어도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아브람이 언급한 사람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들은 직접 위험한 전쟁을 목숨을 걸고 치뤄낸 사람들입니다.
아브람은 그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있으면서도 연약한 살마들을 돌아볼 줄 아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람은 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브람을 통해 복이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손해 보는 선택을 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2. 여러분 주위에 더 챙겨야 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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