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5:2-7]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브람의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브람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자식처럼 여기고 있고 그 아이가 자신의 후사를 이을 것이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처음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보낼 때부터 아브람의 자손에 대해 말씀하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 말씀하셨고 (12:2) 아브람의 자손을 땅의 먼지만큼 만큼 많을 것이라 하셨습니다(13:16).
그런데 시간은 지나지만 아브람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민 가운데서 오늘 이와 같은 말을 했을 것 입니다.
아브람의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 즉, 아브람에게 실제로 자식이 없자 친 자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후사를 이을 상속자로 엘리에셀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엘리에셀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통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아브람은 하나님께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걱정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아직까지 안 주셔서 자신의 친 아들이 아니지만 다메섹의 엘리에셀이 아들을 대신해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아브람은 걱정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브람은 걱정하고 탄식하는 것 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응답합니다.
“그 사람이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그리고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아브람에게 아브람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습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은 우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브람은 하란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런 약속을 오늘까지 세 차례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시간은 많이 흘렀고 아브람도 가나안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나이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직까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선 아브람에게 아들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실은 놀랍게도 아브람은 여전히 가나안에서 거류민입니다. 아브람은 아직까지 아무런 땅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람에게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많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또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신용이 없는 분은 아닙니다. 아브람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 입니다.
앞에서 아브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를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기도가 응답되리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정말 더디게 느껴지는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수정, 응답의 수정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에 대한 대안으로 다메섹 엘리에셀을 이야기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를 하나님이 약속한 자녀로, 자신의 후사로 생각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멋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통과해야 들어주시는 방법을 매번 취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언제난 ‘믿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하나님에 대해서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일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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