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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5:8~16 “고통의 뒷편에 있는 은혜와 긍휼”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2. 16.

[창15:8-16]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나님과 아브람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그 말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 삼 년 된 암소
- 삼년된 암염소
- 삼년된 숫양
- 산비둘기
- 집비둘기 새끼
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은 그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죽입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을 반으로 잘라서 서로 한 쌍을 이루어 마주 보게 만듭니다. 정확하게 동물을 양쪽으로 자른 것입니다. 다만 새는 작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솔개가 쪼갠 사체 위에 앉았을 때 그것을 쫓았고 해가 질 때에 아브람은 깊은 잠과 큰 흑암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에 말씀하십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을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고 사 백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와 갈라디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기 생활 기간을 430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2:40, 갈3:17)

아브람의 자손은 그 기간이 지나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고 그 약속 그대로 후대의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재물들을 이끌고 나오게 됩니다. 

또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대 만에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기간을 보면 400년이라는 기간과 4대라는 기간이 나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다릅니다. 

출애굽을 기준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 기간은 광야의 4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출애굽했던 1세대는 죽음을 맞이했고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1세대는 40년 정도 됩니다. 

그러므로 400년은 매우 긴 시간이며 4세대는 그에 비해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400년의 기간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을 말합니다. 어떤 의미로 이는 절망적인 숫자입니다. 

그런데 400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4대 만에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소망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400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입니다. 즉, 고난과 고통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소망이 가깝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모리족속의 죄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 의미가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며 희망과 소망의 일이지만 동시에 그 일은 아모리족이 상징하는 가나안에게는 가득 찬 죄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여러 의미들이 나열되어 버렸는데 이제 정리를 좀 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심판과 구원,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장차 아브람의 자손들은 400년 동안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한 이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아브람의 자손들이 고난을 받는 기간이 400년이 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 때문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씀 그대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노아의 때와 같이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모리족속의 죄악의 심판으로 아브람의 후손을 사용하십니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신 것일까요? 마치 심판을 내릴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 한계치까지 차기를 기다리셨던 것일까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의 기간이 400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400년 동안 아모리족속의 죄악을 참고 기다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참고 기다리심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기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의 한계치가 차기까지 기다리셨던 것이 아니라 아모리족속이 죄악을 떠나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은혜와 긍휼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아모리족속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기간은 아브람의 자손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나눴던 것처럼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며 회복의 소망은 더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뒤편에는 긍휼과 은혜가 있고 구원과 심판은 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뒤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은혜가 있고 그 은혜로 심판과 구원 사이에서 구원이 우리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 뒷면에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 구원의 소망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2.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지나가고 은혜와 감사가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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