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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6:1~3 “아브람의 선택”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2. 18.

[창16:1-3]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아이러니합니다.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엄청난 언약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실하심을 바탕으로 한 언약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은 아브람의 의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여전히 아브람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을 하지 못했습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땅에 온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아브람에게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도 있었고 심지어 하나님과의 엄중안 언약도 맺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말씀에는 안 나와 있지만 어쩌면 아브람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부터의 일 입니다. 

사래는 어쩌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남편인 아브람에게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을 수차례 이야기 했을 것 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래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이 되었을 것 입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브람을 볼때마다 무거운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사래는 자신에게 있는 여종 하갈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니 하갈을 통해서라도 아브람의 자녀를 낳게 하는 것이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자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하갈과 동침합니다. 말씀을 읽어보면 아브람은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아브람은 왜 그랬을까요?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 자녀를 낳고자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 일까요?

어쩌면 아브람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해답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하갈을 통해 낳은 자녀도 아브람의 자녀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렇게 자녀를 가지게 하시려는 뜻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하나님의 뜻’인데 문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방법, 아내 사래를 통해 자녀를 낳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래가 아닌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허락과 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분별해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경우는 그 방법이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아내 사래를 통해 아들을 낳는 것 이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사랑했으나 이 일이 사래를 통해 낳을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은 역사적으로 중동 갈등의 뿌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결정과 선택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브람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조급한 선택, 조급한 판단을 했습니다. 또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나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 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몇 가지 원칙을 말해봅니다. 가장 큰 원칙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와 일치하느냐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으로 들어가는 것 입니다. 

아브람의 경우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묵상하는 것 이었을 것 입니다. 하갈에게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 기도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제가 믿는 하나님의 원칙은 하나님은 결과를 위해 과정은 아무렇게내 해도 된다고 결코 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결과가 좋더라도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 입니다. 

이건 오늘날의 윤리적 가치관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생각했다면 아브람은 한 번 멈췄어야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원칙으로 삼았다면 아브람은 사래를 위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어덯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여전히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일들을 만날 것 입니다. 그럴때마다 이런 원칙들 성경의 가치관, 올바른 과정,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도 틀릴 수 있겠지만 위 3원칙에 충실했다면 그래도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고민했던 문제는 무엇입니까?
2. 시간이 지나고나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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