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6:7-16]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사래의 학대로 하갈은 도망을 쳤습니다. 그녀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도망쳐 나간 장소는 광야입니다. 그것이 실제 장소지만 광야가 가진 상징성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며 살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묻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갈은 자신이 여주인인 사래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런 약속을 합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그리고 하갈에게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 줍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스마엘[יִשְׁמָעֵאל(이쉬마엘)] 즉,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지은 이유는 하갈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장차 이스마엘에게 있을 일을 이야기하십니다.
이스마엘은 들나귀처럼 되고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고 했습니다.
언뜻 듣기에 축복의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들나귀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보통 나귀라 함은 인간에게 길들여진 짐승입니다. 그러나 들나귀는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입니다. 그것은 자유로움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마엘은 자유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아브람도 그렇게 광야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삶은 유목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항상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툼이나 경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마엘에 대해서 한 이야기는 생존력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자유롭게 삶을 살아가며 많은 분쟁과 다툼 속에서 강인한 생존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 살아남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상에서 보면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갈의 경우 지금 생존 때문에 사래에게서 도망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강인한 생존력에 대한 보장은 일종의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하갈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 고“ 하갈을 그곳의 이름을 ‘브헬라 헤로이’ [בְּאֵר לַחַי רֹאִי(베에르 라하이 로이)] 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온 말로써 실제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본 후에도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갈은 사래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때 아브람의 나이는 86 세였습니다. 이 마지막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갈이 사래에게 돌아갔을 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사래가 변해서 하갈을 더 이상은 학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갈은 사래로부터의 불편한 관계를 참아내야 했습니다
아마 그것은 엄마로서 이스마엘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만나 주셨고 이스마엘에 대한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갈이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아브람의 믿음의 통로는 아니었습니다.
사래와 아브람의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고통과 결과에 무관심하시지 않으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괴로움 중에 울부짖는 하갈의 음성을 들으시는 분이며 잘못된 판단이 낳은 결과도 나 몰라라 해버리시지 않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시고 그것을 보듬어 안으실 마음이 열려 있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질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짐을 감당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칙은 변함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지 우리의 죄악과 잘못을 허용하시는 분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바탕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연약하고 작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실수로 인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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