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9-14]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대대로 지켜야 할 언약을 세웁니다. 그것은 ’할례‘ 입니다. 할례란 [מוּל(물)] 자르다는 말로써 포피를 베어내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남성의 성기의 표피를 베어내는 행위입니다.
할례가 그런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례는 우리에게는 익숙합니다. 우리나라도 할례는 아니지만 남성의 표피를 베어내는 일을 합니다. 그에 대한 의학적, 생리적 이유가 있다고도 하고 일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을까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몸에 세기는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묻지는 않지만 정말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유대인들 남성들은 분명 이 할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고 랍비들에게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궁금증은 왜? 남성의 성기의 표피를 잘랐느냐는 것 입니다. 그것이 언약의 표시라면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귓불을 뚫는다든지, 코를 뚫는다든지 몸의 다른 부분에 피어싱을 하거나 문신이나 낙인 같은 것을 세길 수도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할례의 의미를 본질적인 의미에서 찾습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기독교는 몸의 표식을 넘어 마음에 새기는 할례 즉, 믿음이 본질적인 것이라 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 할 때 그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 아브람일 때에 이미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고 아브람을 의롭게 보셨습니다. 즉, 할례는 그것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몸에 표시하는 의미입니다.
기독교는 그것을 더 확장시키고 완성시켰습니다. 육식에 표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그 믿음, 그것은 마음에 행하는 표식이며 진정한 의미의 할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기독교는 할례를 그렇게 바라보기에 할례에 대해 심각하게 많은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금도 할례가 의무이기 때문에 질문을 합니다.
왜 다른 신체부위가 아닌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 랍비들은 몇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중에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것이 있습니다.
##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생식기는 생명을 낳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도 그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표피를 베어냅니다. 그것은 생명을 낳는 인간의 행위에 언약이 먼저 각인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하시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라는 것 더 나아가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을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 보이지 않지만 지을 수 없는 표식
할례는 틀림없이 몸에 새겨진 표식이지만 항상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내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즉,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결코 제거할 수 없는 표식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할례와 의미가 같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그 할례를 마음에 새긴 사람 역시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식은 없습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틀림없습니다.
## 할례는 피를 수반합니다.
할례를 행하면 피를 흘리게 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거저 얻는 것이지만 언약은 값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아브라함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 할례를 몸에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마음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준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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