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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7:15~27 “하나님의 약속”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2. 25.

[창17:15-27]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기쁨의 웃음은 아니었습니다. 헛웃음입니다. [צָחַק(차하크)] 농담하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도무지 터무니없는 말을 듣거나 보았을 때 나오는 반응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제 100세가 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으며 아내인 사라도 90세인데 어찌 출산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타당한 생각입니다.  둘 다 아이를 낳기에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기를 원한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직접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을 다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아브라함의 마음을 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אֲבָל(아발)]우리말로 ‘아니라’라고 번역을 했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말을 거절하거나 그것이 틀렸다고 선언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부정을 통해 더 확고히 한다는 의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같은 의미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느끼기에 자신은 나이가 많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속으로 생각했던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이스마엘도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번 약속을 하시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도 얼마나 아브라함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문뜩문뜩 현실과 부딪칩니다. 그리고 현실의 상황이 판단의 우선순위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어려워합니다. 

‘현실의 타협일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

이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틀렸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틀리기 쉽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문제를 좀 더 잘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것 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약속받은 것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실 수 있습니까? 사실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은 약속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그의 자손을 약속하셨고 그 땅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하지는 마십시오. 가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이나 어떤 땅을 준다거나 자녀가 잘 되는 무언가, 성공에 대한 약속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을 세상에서 선택해 내서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땅, 하나님께서 거하실 중앙성소가 있는 그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꿈을 위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믿음의 여정이라는 특별한 순례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된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로 한 그 순간부터 아브라함처럼 가나안땅에서의 거류민으로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피를 흘리신 것 입니다. 

우리의 일은 한 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처럼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때로는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 약속이 희미해지거나 잘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하더라도 기다리고 믿고 살아가는 것 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비록 하나님의 약속에 웃어 버렸지만 하나님이 떠난 이후에 자신으로부터 할례를 시작합니다. 그 약속을 믿었기에 그 약속을 마음에 품은 사람으로서의 표식을 몸에 남긴 것입니다.

우리의 자리도 그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의 표식, 마음의 표식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순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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