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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8:9~15 “웃어버린 사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2. 27.

[창18:9-15]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일과 비슷합니다. 사람만 아브라함에서 사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초대한 그 사람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찾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사라가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역시 아브라함 때처럼 기뻐서 웃은 것이 아닙니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 나오는 헛웃음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럴만한 이유도 명확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폐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역시 사라의 웃음을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모든 것이 정리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말씀처럼 능하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왜 믿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왜 믿지 못했던 것 일까요?

우선은 이렇게 이해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니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니 자신도 100세가 다 되었고 아내도 90세가 다 되었으니 이제는 아이를 갖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라도 이미 아이를 낳는 생물학적 기능이 상실되어 버렸으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 사라의 판단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맞습니다. 

이 두 간격에서 우리는 조금 혼선이 있습니다. 상황을 포고 환경을 보니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 해 보니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말씀처럼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지으신 분입니다. 나이가 많은 것이 하나님 앞에 무엇이 문제이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것이 하나님 앞에 무엇이 문제 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1년 후에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믿음 있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사라도 그럴 것 입니다.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그렇게 된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분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이루어져야 할 또는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일이 내 뜻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냐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분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 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을 자신이 믿고 원하는 것을 최선으로 놓고 생각하고 모든 상황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뜻 까지도 자신이 믿고 원하는 것에 합리화시키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편이라고 생각을 하고 믿을 수 있지만 내가 하나님의 편인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경우는 확실했습니다. 처음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도 사라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하며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어렵습니다. 신앙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원칙을 나눕니다.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고 명확한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드러나는 뜻이 있습니다.

먼저, 확고하고 명확한 뜻이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살전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분명하고 명확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것 성품, 내면, 태도, 마음가짐입니다. 

이 부분은 인지만 하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이를테면 결혼, 직장 등과 같은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서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시간의 연속성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 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분별할까요?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분별이라고 하는 것이 그 순간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렸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둘 혹은 셋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경우입니다. 

마치 점을 보듯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뜻은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직장을 선택할까요? 어떤 사람과 교제를 해야 할까 고민이 되십니까? 분별하고 싶으십니까? 다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핵심은 우리 자신의 삶의 태도와 모습입니다. 이 말씀은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말씀이지만 오늘의 질문과 함께 보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습니까?

먼저 나 자신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보여주시면 내가 그 뜻에 맞춰 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세대를 본받지 않고 새롭게 변화되면 하나님의 뜻이 분별됩니다. 

정리를 하자면 역시 같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우리에게 정해놓은 어떤 뜻이 딱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명확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속에서 내가 먼저 변화되어 바뀜으로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것 같지만 신학 하는 삶, 묵상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의 삶에서 알고 싶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 만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원칙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3. 여러분을 향한 명시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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