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8:20-22]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왜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이 질문을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라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 자신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라 생각이 됩니다.
야곱은 들에서 잠을 자다 꿈을 통해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영적 경험 이후에 신앙의 성찰도 합니다.
그저 황량한 들판에 외롭게 홀로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웁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벧엘[בֵּית־애ֵל(베트엘)],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곳을 기둥으로 세워 기념했습니다. 장소에 대한 기념이기도 하며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서원기도를 합니다. 서원이란 [נֶדֶר(네데르)]라는 말로 맹세하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맹세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며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 야곱의 맹세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저는 우리 수준의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맹세라기보다는 거래하는 것 같습니다.
야곱의 맹세를 바꿔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지 아니하고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는 저의 하나님이 아니게 될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없사오니 아무것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겠나이다“
이 기도는 어떤 면에서 협박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야곱은 맹세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선하고 좋은 결과를 주면 자신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야곱스럽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며 손해 볼 줄 모르며 때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속이는 일도 행하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부모로서 자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는 “그거 들어주면 나에게 뭐 해줄 건데요?”라고 묻습니다. 또 어떨 때에는 자녀가 먼저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저 000이 필요한데 그거 주시면 000 할게요”라는 식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하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그런 대화를 부모와 자녀 간에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자녀는 이미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공급받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가 만들어놓은 모든 환경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환경은 부모의 땀과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것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 고마움의 마음과 태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가끔 자녀들에게서 그런 마음과 말, 태도를 보고 싶은 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야곱이 깨달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영적 부모 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감사의 기도가 아니라 거래였습니다. 이러니 한편으로는 야곱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거래하듯 기도하고, 신앙의 열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복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 되고, 믿음은 자신의 계획과 꿈을 이루는 방법이 되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야곱이 그 줄에서 그저 감사만 했다면 어땠을까요?
사실 야곱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이미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인데 야곱은 그것을 해 주셔야만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은혜를 모르는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기도의 우선순위 또는 순서가 틀렸습니다.
[마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만으로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겠지만 야곱의 기도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것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아는 사람, 야곱이 돌베개를 통해 깨달았다면 그 기도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여야 합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 그것은 자신의 인간적 욕망과 탐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신 일들이 자신 안에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 안에 일어나기를 원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아마 당시의 야곱에게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그것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야곱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조건을 달지 않고, 거래하는 내용이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평안과 안전,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으로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이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계심을 깨달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다음에도 그것을 확인하려는 듯 또는 다시 그것을 구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의 믿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야곱의 기도는 미성숙한 우리의 모습을 닮았지만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성숙함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니 우리도 지금의 야곱과 함께 더 깊은 성숙으로 나아가야겠지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이 있습니까?
2. 요즘 가장 먼저 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3. 바껴야 할 기도의 우선순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묵상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묵상] 창세기 28:10~19 “과연 여기 계시거늘” (0) | 2026.02.24 |
|---|---|
| [말씀묵상] 창세기 28:6-9 “늦어버린 깨달음과 자격 없는 자의 은혜” (1) | 2026.02.23 |
| [말씀묵상] 창세기 27:46- 28:5 “이삭의 축복” (0) | 2026.02.21 |
| [말씀묵상] 창세기 27:38-45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0) | 2026.02.20 |
| [말씀묵상] 창세기 27:30~37 “하나님은 악을 들어 선을 이루시는가?“ (1) | 2026.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