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8:6-9]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냈습니다. 에서는 이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에서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저는 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야곱이 자신이 받아야 할 축복을 빼앗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에서는 확실히 울분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야곱을 죽이겠다는 끔찍한 마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에서가 본래 심성이 완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본 에서는 매우 유쾌하고, 어느 하나에 집착하거나 골똘히 몰입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어쩌면 에서는 금방 화를 내고 분노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호탕한 성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을 진심으로 공경했습니다. 야곱에 대한 분노는 컸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고 실행에 옮기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 느껴집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 중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면 저는 오히려 에서를 택하고 싶습니다. 참 매력적인 구석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에서가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동생 야곱에게 다시 한번 축복하며, 밧단아람으로 신부를 구하기 위해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에게는 헷 사람의 딸들인 아내들이 있지만, 그 아내들이 어머니 리브가나 아버지 이삭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큰아버지 이스마엘의 가문을 찾아갑니다. 연대기적으로 계산해 보면 당시 이스마엘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137세에 별세했는데, 이삭보다 14살이 많았습니다. 이삭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 이스마엘은 74세였고, 에서가 가나안 여인들과 처음 결혼한 40세 때 이스마엘은 114세였습니다. 학자들은 오늘 본문의 시점, 즉 야곱이 떠날 때의 나이를 약 77세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이 세상을 떠난 지 약 14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따라서 에서는 이스마엘을 직접 만난 것이 아니라 그의 가문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장자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에서의 이러한 행동은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뒤늦은 노력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측은지심이 느껴집니다. 모든 것을 동생에게 빼앗기고 동생이 떠난 빈자리에서, 뒤늦게나마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려 애쓰는 모습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오히려 야곱은 받을 복을 다 받고, 거기에 축복을 더해 부모님이 원하는 아내를 얻으러 간다는 구실로 불편한 상황을 묘하게 빠져나갑니다. 그 모습이 참 얄밉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하나님은 왜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어려운 숙제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에서가 더 멋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야곱은 제 자신을 닮아 영악하고 교활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주권적인 선택'이며, 동시에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 매력적이지 않고 이기적인 야곱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하기에, 자격 없는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에서에게 느껴지는 연민은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자신, 혹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주변에 에서와 같이 인간적 매력은 있으나 영적인 가치를 놓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2. 여러분의 마음에 측은함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위해 오늘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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