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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7:38-45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20.

[창 27:38-45]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 그의 아버지가 야겁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다 생각한 에서는 울부짖습니다. 에서의 울부짖음에 공감이 됩니다. 얼마나 억울할까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에서는 야곱이 과거에 붉은 죽 한 그릇으로 자신의 장자 명분을 산 일을 기억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에서는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야곱이 자신과 아버지를 속이고 자신의 것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억울하고 분에 찼습니다. 그래서 울기까지 합니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빌어줄 복이 남아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일반적인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에서에게도 복을 빌어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복이 말로써 빌어주고 잘되기를 기원해 주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유업에 대한 유언이나 공증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울고 있는 에서에게 이삭이 한 말을 보면, 이것은 장자의 권리로 취할 수 있는 상속에 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에서의 주로 세웠다 할 때 그 '주'는 [גְּבִיר(게비르)]로, 이는 주인을 의미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가문의 주인, 즉 '가주'를 의미합니다. 또한 곡식과 포도주도 가문의 토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수익권이 장자에게 귀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이삭이 야곱에게 한 축복은 구체적인 상속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에서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일은 에서로서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자신이 장자이며 당연히 자신에게로 상속되어야 할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야곱은 집요하게 그것을 노려왔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와 자신을 속이고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에서는 정말 억울하고 분할 것 같습니다. 제정신이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일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 같은 위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무너지고 살아갈 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생깁니다. 절망, 분노, 복수, 내려놓음, 잊어버림, 포기, 투쟁, 노력, 다른 생존의 길 찾기 등 많은 선택지가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겠습니까?

에서는 불타는 분노를 느꼈고 복수를 선택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죽으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려는 끔찍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이 장면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가인과 아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자 가인은 분노하여 아벨을 죽이려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리고 정말 들에서 동생 아벨을 죽여 버립니다.

에서도 그 길로 들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니 리브가가 에서의 마음을 알게 되어 야곱을 피신시키려 합니다. 그로 인해 에서의 야곱 살해 계획은 다행히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다시 한번 이 지점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 봅니다.

[창 4:6-7]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고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면해야 합니다. 가인이나 에서와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일어납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처럼 선을 행하고, 죄를 다스려야 죄 가운데 넘어지지 않고 죄에 삼켜지지 않습니다.

제 자신만 해도 살아오면서 가인이나 에서 정도는 아니지만, 죄 앞에 넘어지고 죄에 삼켜져 누군가를 상처 주고 힘들게 했던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말씀이 그 순간마다 마음에 들렸다면 모두는 아니지만 많이 멈추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서와 같은 일을 만났을 때 선택지가 분노와 복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기에 선을 선택하고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들도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선택지 중 하나는,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으나 그것이 반드시 야곱만 다 누리게 되고 에서는 망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에서와 야곱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가주의 권위와 재산의 상속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자가 되고 들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 비참한 인생을 경험하고, 외삼촌의 집에서 삯도 제대로 못 받고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에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서는 세일 땅으로 가서 살면서 그곳의 지도자가 됩니다. 400명을 거느리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복수로 인생을 불태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에서의 분노와 원한을 만납니다. 그리고 에서처럼 복수를 꿈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있고, 지금 만난 억울함이나 기가 막힌 현실이 미래를 결정해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에게는 분명히 다른 선택지들이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에서처럼 억울하고 화가 나는 경험을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2. 어떤 선택을 하셨고 결과는 어떻습니까?
3. 더 나은 선택을 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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