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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7:24~37 “하나님은 이루십시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18.

[창27:24-37]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다시 한번 축복을 축복이 담긴 편지라는 가정하에 관계를 정리하겠습니다. 

1. 축복을 실제로 주시는 분 하나님  
2. 축복의 통로가 되어 전달하는 사람, 이전엔 아브라함, 지금은 이삭  
3. 축복을 받는 사람 야곱 혹은 에서  
  
이 관계에서 진행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삭이 이 축복의 편지를 에서에게 전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와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자신이 에서라고 하여 이 축복의 편지를 받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에세에게 편지를 잘 전달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제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누구에게 전달된 것일까요?

상식적인 부분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른 사람 앞으로 온 편지가우리 집 우편함에 꼽혀 있습니다. 그 편지가 우리집 우편함에 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편지를 뜯어서 봐도 될까요?

아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떤 편지는 절대로 수취인이 아닌 사람이 개봉할 수 없는 개인정보에 관한 것이나 공적인 문서들입니다. 이것을 개봉하면 법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이런 것은 법적으로 ‘기망행위’ 나 ‘처분행위’ 등의 사기죄에 대항합니다. 

이제 세 번째 질문을 해 봅니다. 이런 경우 이삭의 축복은 야곱이 받게 될까요 아니면 에서의 것이 될까요? 

그것이 제산상의 물질적인 것이라면 에서가 회수회 가면 되는데 축복은 물건이 아니기에 그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삭이 받은 것일까요?

한 가지 더 의문을 들게 하는 지점은 이삭은 완전히 에서인 줄 알고 에서에게 축복을 해 준 것입니다. 결론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 축복을 들었습니다. 

이 축복은 누구에게 갈까요? 영적인 것이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삭이 에서에게 했기에 들에 있는 에서에게 갈까요? 아니면 속이고 앞에서 들었던 야곱에게 갈까요?

사실 이 질문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발견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축복이 편지를 쓴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편지의 수취인을 누구로 정하셨습니까? 야곱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의 축복이 야곱에게 갈지 에서에게 갈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더 있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자신이 야곱에게 축복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진짜 에서가 방으로 들어옵니다. 에서는 음식을 해서 아버지에게 갑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이삭은 깜짝 놀랍니다. 33절에 그때의 이삭은 심히 크게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떨다로 번역된 말은 [חָרַד(하라드)]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떨다, 전율하다, 진동하다, 두려워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삭이라면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인데 그때 느끼는 감정은 전율하거나 두려워하거나의 감정이 아닌 분노의 감정일 것입니다. 그 분노의 감정은 에서가 느낍니다. 에서는 이 일로 야곱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이삭은 분노가 아니라 떨림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론 분노가 차오를 때 온몸이 떨릴 수도 있지만 일어난 결과에서 깨닫게 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앞에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전하기를 원하는 축복을 에서에게 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에서인 줄 알고 축복을 했는데 그게 야곱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이 그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깨달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축복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쩌다가 자신은 에서에게 이 축복을 주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손에서 실수 없이 흘러내려가는 이 축복은 야곱에게 갔습니다. 그때 깨닫는 것은 어쩌면

‘아! 나는 에서에게 축복을 물려주려 했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구나. 내 판단이 틀렸구나’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야곱에게 했어야 할 축복을 에서에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실행하려 했었던 것입니다. 

"God writes straight with crooked lines"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브러진 선 위에서도 곧게 쓰신다는 말 입니다. 

온갖 구브러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에서의 영적 무질서함, 야곱의 탐욕, 그런 야곱을 더 아꼈던 리브가, 에서를 좋아했던 이삭, 에서를 속이는 야곱, 이삭을 속이는 리브가와 야곱, 이런 관계에서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던 구브러진 행위, 어떻게든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려는 리브가와 야곱의 구브러진 행위 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진 축복이 야곱에게 흘러 내려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신중히 다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묵상해 봅니다. 

사람의 계획과 무질서함, 판단의 어리석음과 간계 등 온갖 죄악과 부조리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계획하신 모든 일들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자리는 언제나 겸손함이며 묻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계획이 있겠지만 그 길과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순종하는 것은 억울한 일일까요 아니면 평안한 일일까요?
2. 결국은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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