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7:14-23]
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이삭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자신이 에서라고 속여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아버립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는 것은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과 속임수로 얼룩 저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이삭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탐욕스러운 마음 때문에 가족이지만 서로 속이고 속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탐욕스러운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한 번 더 생각해 볼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안’입니다.
야곱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은 인물입니다. 그것이 태어날때 생리적인 반응으로 일어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성경은 그것을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았다는 부분에서 이미 이와 같은 일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사건 바로 우리에게는 팥죽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산 사건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나누기도 했지만 에서의 성격을 이용해 붉은 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샀습니다.
또 리브가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야곱은 이번 일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 속에 나타난 야곱의 성격은 소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기로 마음먹은 것에는 어머니 리브가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위해서 음식도 준비하고 야곱을 에서처럼 꾸미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리브가는 왜 그랬을까요?
리브가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리브가에게 있어 에서와 야곱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중에 있을 때 에서와 야곱이 서로 싸웠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에서 큰 자 에서가 작은 자 야곱을 섬기게 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리브가는 이때 야곱이 에서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더 아꼈는데 그 이유는 남편인 이삭이 에서를 더 사랑했기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야곱에게 더 정이 갔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것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리브가가 그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면 이삭이 죽기 전에 야곱을 제외하고 에서에게 축복을 주는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을 에서처럼 분장시켜 이삭을 속이고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리브가에게 본 긍정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이 에서보다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마음에 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입니다.
반면 리브가에게 있는 부정적인 부분은 야곱의 경우와 같습니다.
‘불안’에 기인한 일입니다.
다시 야곱의 불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뒤꿈치를 잡았다는 것에서 경쟁하게 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 경쟁 안으로 뛰어드는 심리적 요인은 불안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함이 경쟁에 참여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입니다.
야곱이 붉은 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사려했습니다. 누가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지합니다. 맹세까지 요구했습니다.
에서는 그것을 가볍게 여기기도 했지만 야곱은 그것을 진심으로 얻고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 이후 야곱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에서의 장자권을 샀으니 야곱이 장자가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에서는 야곱의 형이었고 이삭은 야곱을 더 아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야곱이 가진 심리적 상황은 불안입니다. 부모도 인정해주지 않거나 아예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불은은 야곱의 몫이었습니다.
그때 산 장자권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혹 에서가 그런 일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장자권을 주장했다가 아버지 이삭에게 오히려 저주를 받지 않을까?
야곱은 그 장자권에 대한 소유에 대해서 평생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리브가의 경우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면 야곱이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에서만 불러서 축복을 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야곱이 받아야 하는 것인데 지금 상황이 에서가 받게 되었습니다.
불안합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이 받게 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안을 제거해 보면 어떻게 될까요?
야곱이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형인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누리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곱이 그 일을 불안해하지 않았다면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 것 입니다.
리브가는 어떨까요? 사실 이것이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 그 결과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그 결과대로 진행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처럼 보이지만 불안입니다.
성경에서 끊임없이 발견하는 하나님은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에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십니다.
즉, 리브가가 불안 대시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면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하려는 이것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묵도하는 믿음의 선택을 했을 것 입니다.
불안을 넘어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랬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에 기인한 믿음의 행동이었다고 착각할 수 있는 일, 속이고 속여 넘기는 일을 야곱이나 리브가가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오늘 이 시대에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2.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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