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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6:22~33 “브엘세바로 2”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12.

  
[창26:22-33]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기근을 피해간 이삭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랄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그랄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그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었던 우물들을 다시 복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물을 더 팠는데 그때마다 그랄의 주민들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그런 다툼이 생길 때마다 그 우물을 양보하고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렇게 몇 개의 우물을 파며 옮겨가다 한 장소를 만납니다. 그곳에서도 우물을 팠는데 그곳에서는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을 르호봇이라 불렀습니다. [רְחֹבוֹת(레호보트)] 즉, 넓은 광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삭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토르호봇에 이르기까지의 이삭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그것은 다툼을 피하며 양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삭이 이방인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이삭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주장을 할 수 있었고 실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겸손의 태도를 취한 것이고 평화를 위해 양보한 것 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그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26절 이하를 보면 아비멜렉이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을 찾아옵니다. 그때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인의 첫 째 되는 삶의 목표를 하나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이삭을 통해서 봅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나 이삭의 모습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삭이 한 일은 무엇일까요? 

말씀속 이삭의 모습에서 아비멜렉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일들을 찾아보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다툼을 피하고 평화를 위해 양보했던 모습입니다. 이삭은 그렇게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이삭은 자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우물을 팔 수 있고 생수의 근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근원은 하나님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삶의 자신감이나 당당함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교만함이 아니라 양보하고 손해보는 것을 때론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됩니다. 

이삭은 그렇게 했고 그렇게 했는데 여전히 좋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찾는다면 브엘세바에서의 일 입니다. 

이삭은 르호봇을 찾았습니다. 그곳은 넓은 곳이었고 그곳에서 번성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그곳에 계속 머물지 않았습니다. 

브엘세바로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르호봇과 같은 장소를 만나면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지리라 생각이 됩니다. 고생 끝에 얻은 좋은 곳이고 그곳은 충분히 머무를만하고 번성할 만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브엘세바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갔을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다시 한번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삭은 그곳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르호봇도 좋은 곳이지만 하나님은 이삭이 브엘세바로 오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브엘세바가 갖고 있는 지리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곳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였다는 것이 의미 있어 보입니다. 

그곳은 이전에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장소입니다. 즉, 예배의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비멜렉이 여호와의 이름을 이야기했던 이유가 보입니다. 이삭이 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습을 드러낸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행동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하나님이 하나님됨을 드러내는 원리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다툼을 피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때론 양보하고 손해도 보며 평화를 구하고 오직 예배에 힘쓰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손해 보기를 싫어하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때론 다투기도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한 경험은 무엇입니까?
2.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예배라면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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