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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25~27~34 “탐욕 대 탐욕”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9.

[창25:27-34]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그 아이들, 에서와 야곱이 장성했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들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또 다른 형제인 야곱은 조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에서와는 내향적이고 장막 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했고 사냥한 고기를 음식으로 만들어 아버지인 이삭과 함께 먹는 것을 즐겼고 이삭도 아들이 해주는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비교적 조용히 지내는 야곱보다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반면에 리브가는 조용히 집안에 머물기를 좋아했던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죽을 쑤었습니다. 때마침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종일 들에서 거칠게 활동한 에서는 몹시 피곤하고 시장했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쑨 붉은 죽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드라시에는 렌틸콩으로 쑨 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죽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은 풍자와 조롱의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에서가 붉은 것을 내가 억제하라 했기 때문에 에돔이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서는 여러면에서 붉은 색과 이어집니다. 태어날때부터 피부가 붉은 빛 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냥을 좋아하고 잘했는데 사냥한 음식은 붉은 고기였고 붉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또한 붉은 죽을 원했고 후에 붉은 땅인 세일산에 거주했습니다. 그래서 이름과도 비슷한 붉다는 의미의 [אֱדֹם(에돔)], 붉은 이라는 의미의 에돔이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죽을 달라고 했습니다. 드런데 그 표현이 이렇습니다.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에서 그 붉은 것은 [אָדֹם(아돔)]이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붉은 것에 대한 강조 입니다. 즉, 에서는 그 죽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않고 단지 ’붉은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게하라‘라 했는데 이는 [לָעַט(라아트)]라는 단어로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다는 의미 인데 이를 [הַלְעִיטֵנִי(할이테니)]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먹고싶다는 것이 아니라 먹게 하라는 말로 야곱에게 죽을 자신의 입에 쑤셔 넣거나 삼키게 하라는 의미 입니다. 

에서는 피곤해서 침대나 의자에 걸터 안아서 입을 벌리고 있겠으니 야곱이 에서에게 그 죽을 입에 넣어 달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동물에게 먹이를 줄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 부분에서 에서의 태도는 ‘탐욕’ 그 자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야곱은 에서에게 말합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그러자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오늘 내게 맹세하라”라고 말하고 에서는 맹세를 해 버립니다. 그리고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었습니다.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팥죽’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어는 이렇습니다. [עָדָשׁ(아다쉬)]로 렌즈콩 혹은 렌틸콩입니다. 이는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부분이 가미된 것이라 보입니다. 

렌즈콩이나 렌틸콩은 성경을 번역할 당시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알려지지 않은 콩이었고 붉은색이라는 것에서 우리 정서에 익숙한 팥죽으로 번역되었다고 보입니다. 

결국,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서 붉은 죽을 먹었습니다.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면을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에서의 어리섞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에서의 탐욕과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곱이 거룩하다거나 선하다거나 하는 평가를 받아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탐욕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에서는 이미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습니까? 밖에서 종일 사냥을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형 에서에게 죽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은 가족으로써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하나가 아닐까요?

그런데 야곱은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것은 ‘장자의 명분’입니다. 어떤 해석에서 야곱이 거룩한 것을 추구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간발의 차이로 에서에게 장자권을 빼앗겼습니다. 그것이 야곱에게는 어떤 열등이나 갖지 못한 것에서 오는 갈망 같은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이 죽을 쑨 계기가 평소에 에서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일부러 준비한 것이라면 더더욱 치밀하게 어떻게든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계략입니다. 

죽 한 그릇이 장자의 명분과 비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야곱은 그걸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자 했습니다. 야곱이 똑똑한 것일까요? 에서의 탐욕을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했습니다. 그걸 똑똑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영악하고 간교하고 약삭빠른 사람이라는 평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했는데 야곱도 똑같다고 봅니다. 장자의 명분이 가볍지 않고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고작 죽 한 그릇으로, 약삭빠르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낚아채려 했습니다. 그건 탐욕이지 장자의 명분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은 불안한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맹세해라’라고 말 합니다. 정말 에서의 말 한 마디에 자기것이 될 수 있는지, 에서가 말을 바꾸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맹세하라고 까지 말하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에서의 경솔함을 봅니다. 그리고 야곱의 탐욕도 봅니다. 그리고 그 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나도 있음을 살펴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인데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2. 귀하고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과 과정을 택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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