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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4:61~67 “묵상하다가”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4.

[창24:61-67]
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62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세기 24장에는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한 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임하는 늙은 종, 다메섹의 엘리에셀로 추정되는 종에게 금은보화를 주고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어 맹세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아브라함의 고향에 가서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늙은 종은 메소포타미아로 향하고 한 성 앞 우물곁에 앉아서 하나님께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을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표징을 이야기(기도) 합니다. 

그가 말한 표징은 소녀 중 한 명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을 하면 이종에게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는 여인을 순조롭게 만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라는 여성이 왔고 종과 낙타들에게 모두 물을 긷는 친절을 베풉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손녀라는 것을 밝히고 종은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의 경배를 드립니다. 

이후 리브가의 오빠 라반이 이 종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종은 음식을 먹기 전에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을 전해야 한다고 하여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두 이야기합니다. 

종의 이야기를 듣고 라반과 브두엘은 이 모든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하며 혼인을 승낙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리브가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좀 더 집에 머물러 있다 보내려 했지만 리브가는 즉시 종을 따라가겠다며 단호한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종과 함께 가나안으로 옵니다. 

본문은 리브가가 가나안땅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고 있는 곳으로 왔을 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성경의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 중 젊은 시절에 읽었던 저에게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 꼽히는 부분입니다. 

말씀을 보면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에 이삭은 들에 있었습니다. 이삭은 그곳에서 홀로 고요히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묵상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שׂוּחַ(수아흐)]라는 단어인데 생각에 잠겨 묵상하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본문의 이삭의 행동을 오후기도의 기원으로 보고 있고 오후기도의 창시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삭처럼 오후기도를 해야하는느냐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이삭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해가 저가며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오후의 한 때에 하나님께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기도를 드리다 낙타 무리의 소리를 듣고 눈을 뜹니다. 이삭의 눈앞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아브라함의 충실한 종과 낙타무리를 봅니다. 그런데 낯선 한 여성도 함께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동시에 리브가도 들판에서 묵상을 하다가 자신을 보고 일어선 한 남성을 봅니다. 리브가는 어떤 신비로운 감정에 이끌렸는지 이삭을 보고는 낙타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에 대해서 종에게 묻습니다. 

그는 대답합니다. 

“내 주인입니다.”

리브가는 즉시 너울로 자신의 얼굴을 가립니다. 그리고 잠시 이삭이 가까이 왔을 때 그 종은 지난 일을 다 이야기하고 리브가를 소개합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첫 만남입니다. 이 장면이 참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삭이 광야의 빈들에서 묵상하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반려자인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들에게 참 귀감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결혼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서정윤 시인의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홀로서기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광야에서의 이삭의 묵상은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삭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슬픔을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 묵상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마음을 빚으시도록 기다리는 시간이고 상처를 감당하고 싸매며 회복되어 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삭의 묵상은 리브가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고 기다림 그 자체가 이삭의 삶의 태도였고 하나님이 만지시고 회복시키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이삭에게 리브가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처가 아물어지고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하나님께서 만지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이삭처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습니까?
2. 어떤 결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림의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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