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1-9]
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다고 말합니다. 사라의 죽음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창세기 25장에서 이삭의 결혼이 나오는데 그때 당시 나이가 40세였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당시 아브라함은 137세, 이삭은 37세였습니다. 그러므로 24장은 아브라함이 140세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라의 죽음 이후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종을 부릅니다. 이 늙은 종은 한때 아브라함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생각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라 봅니다. 아브라함이 가정의 중대사를 맡길 만큼 신임하고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늙은 종에게 자신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 말합니다.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이상합니다. 이상함을 넘어 괴기합니다.
허벅지 밑에 손을 넣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허벅지는 [יָרֵךְ(야레크)]라는 것으로 넓적다리를 의미합니다. 개역한글 버전에서는 이것을 ‘환도뼈‘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할 때 하나님이 치신 곳이 바로 환도뼈 즉, 허벅지입니다.
즉,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의 문서들 중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기록된 것들이 있습니다.
누지문서(Nuzi texts)와 마리(mari),에블라(Ebla)텍스트 나옵니다. 이곳에 기록된 내용은 종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상급자의 무릎 혹은 허벅지 부근을 잡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또는 신체의 은밀한 부분이나 생식기 부근을 만지며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이런 행위의식을 하는 이유는 ‘생여력’과 관련된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부근을 통해 맹세를 하는 것 입니다. 맹세를 어길 시 자신의 생명이나 후손의 끊어짐을 감수하겠다는 맹세입니다.
유대인들은 맹세를 할 때 거룩한 물건을 잡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이나 테필린 등입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에서는 성경도 없었고 테필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거룩한 증표가 있었습니다. 바로 ‘할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증표인 할례는 당시에 거룩한 증명이었기에 아브라함이 이 방식을 사용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위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할 때 이렇게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은 늙은 종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맡기려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조건은
1. 가나안 족속의 여인은 안된다.
2. 아브라함의 고향 친족 중에서 택해야 한다.
3. 신부 될 사람이 이곳으로 와야 한다.
늙은 종은 만일 여인이 이곳으로 오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제 여기까지 성숙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나안에서의 아브라함의 인생은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응답이었습니다.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과 약속을 받았고 이제 140세가 되기까지 거의 인생의 절반을 가나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잊은 듯하고 포기한 듯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의 기간이었고 이제 140세가 되고 보니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미래의 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 믿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고향땅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가나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면, 또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면, 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많을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이삭이 가나안 땅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으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가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늘 그런 긴장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현실의 상황 사이에서의 선택의 기로 그것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주소입니다.
현실을 따라 선택할 것인가? 절충 또는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고 버틸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어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토록 중요한 일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붙잡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믿음의 성숙함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선택의 기준을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뜻과 현실의 상황 사이에서 갈등해 본 경험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그럴 때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습니까?
3.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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