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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3:6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 30.

[창23: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굉장히 후대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 즉, 사라를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들의 묘실을 아브라함이 쓰는 것에 대해서 금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을 그들이 인정하고 그를 대우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선조들이 묻혀있는 공동체 정신이 깃든 묘실의 사용권을 아브라함에게 허락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최고의 호의를 보여주고 인정해주는 그들의 태도는 정말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실 다른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한 말을 다시 기억해야

[창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은 자신은 나그네신분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땅에 주민이 아니라 거류민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땅 한 조각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를 매장할 소유지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달라는 소유지는 [אֲחֻזָּח(아훗자)] 입니다. 이는 ‘붙잡다, 움켜쥐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아브라함이 온전한 권리를 가진 땅입니다. 

반면 헷 족속은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을 주겠다는 의미 입니다. 이것은 이후 헷 족속과의 관계여부에 따라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반면 사라의 묘지가 헷족속의 묘실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사회의 일원이 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취한 태도지만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이것이 세상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 소유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우리가 손에 움켜잡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됩니다. 당장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묘실 사용권을 얻은 것처럼 잠시 붙잡고 있을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원했던 것은 온전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땅입니다. 영원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땅 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아름답고 가치 있어 보이고 원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세상에서 결코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마치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요구했던 것처럼 영원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입니다. 

말씀을 보며 분별해야 함을 느낍니다. 우리에게 호의적이어도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세상이 아니라 진짜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봐야 함을 묵상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내 인생의 마지막에 남을 진짜 내 땅은 어디일까요?
2. 최근 나의 관심사는 세상이 잠시 빌려 준 것입니까, 아니면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의 소유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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