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3:1-2]
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창세기 23장은 사라의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라는 12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라는 헤브론, 다른 이름으로 기럇아르바에서 죽었습니다.
잠시 지리에 대한 정리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체류하고 있던 지역은 브엘세바였습니다.
[창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브엘세바[בְּאֵר שֶׁבַע(베에르 셰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의 팔레스타인의 한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할 장소가 모리아땅입니다.
모리아 [מוֹרִיָּה(모리야)], 여호와께 보임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입니다. 이곳의 위치는 역대하 3장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모리아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장소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다윗이 성전을 짓기로 정한 곳입니다.
정말 모든 것이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퍼즐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모리아는 하나님께서 훗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살아갈 땅에 건축하기로 정하신 중앙성소가 세워질 위치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 한 그곳이 하나님께서 이사라엘 백성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신 바로 그 장소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지듯,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장소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한 장소를 더 보겠습니다. 헤브론입니다. 사라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입니다.
헤브론 [חֶבְרוֹן(헤브론)], 결합, 교제라는 의미의 땅입니다. 그런데 이 지명은 사실 익숙한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류민으로 살아갈때의 거점 중에 한 장소가 마므레 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 상수리 나무 수풀에 거주했습니다. 천사들을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결합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아브라함의 순종이 결합된 장소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소는 정말 그런 장소가 됩니다.
창세기 23장은 브엘세바 - 헤브론 - 모리아라는 세 지명의 관계를 같이 봐야 합니다. 당시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헤브론에 거주하다 브엘세바로 내려와서 거주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로 갑니다. 모리아는 브엘세바에서 약 75km 정도 떨어진 곳 입니다. 그리고 모리아로 가는 중간 지점에 헤브론이 있습니다.
이곳은 고대 사회에서 족장의 도로라고 불려진 산맥의 능선으로 따라 이어진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길을 따라 3일을 이삭과 나귀, 종들과 걸어 갔던 것입니다.
헤브론은 그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데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22장 사건과 23장의 사건 사이의 간극입니다. 사실 침묵하고 있기에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추측으로는 22장의 사건 이후 수년이 지나면서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마므레 상수리나무로 다시 돌아왔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부분에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참고할 사항으로만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유대의 주석서인 미드라시 라바 창세기 편에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쳐야 하는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의 아내 사라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종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침묵 속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거의 8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 모리아땅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라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찾아서 헤브론으로 올라갑니다. 이 부분은 유대교 문헌인 ‘피르케이 데 랍비 엘리에제’에 있는 내용입니다.
사탄이 사라에게 가서 노인처럼 변장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네 아들 이삭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사라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가서 공부시키고 제사드리는 법을 배우게 하려 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탄은 이렇게 말 합니다.
“오 가련한 어머니여, 너는 다시는 네 아들을 보지 못할 것이다. 보라, 그의 아버지가 그를 데려간 번제단 위에 눕히고 칼을 들어 그를 죽이려 하였느니라”
사라는 그 소리를 듣자 크게 소리를 높여 울었고 세 번의 비명을 지르고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기럇 아르바’라고 부릅니다.
기럇 아르바[קִרְיַת אַרְבַּע(키르야트 아르바)]는 키르야와 아르바라는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키르야는 마을, 성읍이라는 의미이고 아르바는 숫자 4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 4는 아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것은 유대교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유대인들의 이해는 사라가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 있었던 번제사건을 알게 되고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말하고 있지 않으니 여전히 참고할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룬 이유는 지금 벌어진 하나의 큰 사건, 이삭의 번제 사건이 그냥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사전 이후로 하나님의 퍼즐이 맞추어져가고 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그 죽음이 놀라운 일들을 앞으로 만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 크십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말씀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우연한 일이 우연이 아니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2. 우연 속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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