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20-24]
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아브라함과 이삭의 어마어마한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22장 한 장을 완전히 할애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 23장으로 바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5개의 절이 마치 마지막 부분에 마치 끼워넣기를 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도 개연성이 없어 보입니다.
성경은 갑자기 나홀이라는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이 나홀은 [נָחוֹר(나호로)] 거친 숨, 콧김을 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이 나홀은 아브라함의 형제입니다.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족보에 기록된 사람입니다.
[창11:27-28]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형제 나홀에 대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홀이 그의 아내 밀가 사이에서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나홀의 아들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홀에게는 밀가라는 아내가 있었고 르우마라는 첩이 있었습니다.
밀가를 통해 낳은 아들은 맏아들 우스로부터 시작해 부스, 그무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입니다. 모두 8명입니다.
그리고 첩인 르우마를 통해 낳은 아들은 가함, 다함, 다하스, 마아가입니다. 모두 4명입니다. 도합 12명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12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아들 이스마엘에게 12 방백을 낳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창17: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그리고 느바요트, 게달, 앗브엘, 밉삽, 미스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라는 12 방백을 낳았고 이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주요 부족의 기원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 에서와 야곱도 12 아들들을 낳습니다.
에서는 12 족장을 낳습니다. 3명의 아내를 통해 아들들을 낳는데 아다를 통해 데만, 오말, 스보, 가담, 그나스, 아말렉을 낳습니다. 바스맛을 통해 나핫, 세라, 삼마, 미사를 낳습니다. 오홀리바마를 통해 여우스, 야람, 고라를 낳습니다.
에서의 동생인 야곱도 12명의 아들들을 낳습니다. 레아를 통해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을 라헬을 통해서 요셉, 베냐민을 빌하를 통해서 단과 납달리를 실바를 통해서 갓과 아셀을 낳습니다.
오늘 본문의 나홀도 12명의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12라는 숫자는 선택된 공동체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홀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아브라함과 나홀의 경우를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가나안으로 떠났던 사람입니다. 반면에 나홀은 고향땅에 머물면서 그곳의 문화와 삶을 영위하면서 번성했던 사람입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의 모습과도 겹쳐지는 것 같습니다.
나홀의 족보에서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이름은 나홀의 아들 브두엘이 낳은 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리브가입니다. 이후에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2장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한 나홀가문의 이야기는 의미 없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22장의 내용은 이삭의 번제였습니다. 이삭은 22장에서 죽음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나님의 예비하심, 이삭의 생명을 대신할 숫양을 통해 이삭은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홀의 등장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어 아브라함의 믿음의 계보가 이어져 내려가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무심코 든 생각에 22장에서 나홀의 등장은 생경하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시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지금은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커다란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가시며 그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시고 우리를 향한 선하신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퍼즐이 맞춰지는 경험 해 보신일이 있습니까? 어떤 것이었습니다.
2.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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