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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3:2~4 “거류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 28.

[창23:2-4]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사라가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애통했습니다. ‘들어가다’라고 번역된 단어가 [בּוֹא(보)]라는 단어인데 일반적으로 ‘가다, 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해석을 따르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없었으며 아브라함이 사라의 소식을 듣고 사라에게 갔던 것으로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 부분을 정확히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일로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나아갑니다. 

헷 족속은 당시에 헤브론의 유력한 토착세력 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들로 볼 수 있습니다. 함의 아들 중 가나안은 11명의 아들들을 낳습니다. 그들을 가나안 11 족속이라고 부릅니다.

[창10:15-20]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말에서 기억해야 할 지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곳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사라보다 10살이 많은 아브라함은 137세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62년이라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브라함은 많은 것들을 이루었습니다. 많은 재물도 얻고, 명성도 얻고, 강력한 영향력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굉장히 성공한 사람이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여전히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 같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가나안에 토지 한 조각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한 조각 땅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욕심이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인들에게는 여전히 외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토지’란 거룩한 유산과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외지인들에게 팔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죽음으로 인해 무덤이지만 그 땅이 필요해졌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묵상할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여전히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은 거부였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왕들조차도 아브라함을 신경 써야 할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한 조각의 땅조차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인생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은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려도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우리 스스로를 정의한 문학적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더더욱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땅을 살아내지만 이 땅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고 또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모두 놓고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말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표현할 수 단어들이 있습니다. 구도자, 청지기, 순례자, 나그네와 같은 것들입니다. 마음에 드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2. 그 이유는 무엇이며 그 단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의 여러분의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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