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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5:1~11 “노년의 아브라함 그리고 죽음”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5.

[창25:1-11]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했습니다. 

그두라라는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두라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그녀를 하갈로 보기도 하는 시각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25장 첫 절을 읽으면서 불편함이 몰려옵니다.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 사라의 죽음 이후 다른 여인을 맞이하여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당시의 나이가 140을 훨씬 넘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결혼만 했던 것이 아니라 6명의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써 이삭이 있는데 왜 또 다른 자녀를 낳았을까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미 한 차례 이스마엘을 낳으면서 갈등을 경험했을 터인데 또다시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죄를 지었거나 믿음을 배신했거나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정서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품위와 인격이 더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후손들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미 이삭은 이스마엘과의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인류 역사에 뿌리 깊은 갈등관계로 이어집니다. 

그두라를 통해 낳은 자녀들은 어떨까요?

그두라의 자녀들은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입니다. 익숙한 이름이 보이십니까? 미디안은 어떻습니까?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입니다. 그는 미디안의 제사장입니다. 이 부분은 사둔관계가 형성이 되면서 친밀함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민수기 25장의 브올사건 이후 원수관계가 됩니다. 사사들의 시대에 미디안은 메뚜기떼처럼 비유되어 이스라엘을 약탈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통해 자녀들을 낳았지만 철저하게 이삭과 구분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만 주었습니다. 이삭 외에게도 재산을 주었으나 그 조건은 이삭을 떠나 동쪽 땅으로 가서 사는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오늘의 윤리적 관점으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나 가부장적인 모습이며 또 가족 안에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 차별을 아브라함이 만들었습니다. 

그두라를 통해 낳은 자녀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삭과 차별대우를 받으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현재의 삶에도 그렇고 존경하고 대단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의 노년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사실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질문은 조심스럽습니다. 나도 젊은 세대의 사람들이 보기에 저렇게 될까? 그것이 무엇이든 집착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끝까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위대한 거장도 인간적인 실수와 흠이 있다.
나도 그렇다.

믿음의 거장 아브라함의 길고 긴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그 끝에서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사라가 장사된 막벨라 굴에 장사됩니다. 그곳이 가진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땅의 첫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갈 땅이라는 상징적인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연약함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노년의 모습에 실망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2. 우리 자신이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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