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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7:30~37 “하나님은 악을 들어 선을 이루시는가?“

by 기대어 보기를 2026. 2. 19.

[창27:30~37]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다시 한번 축복을 축복이 담긴 편지라는 가정하에 관계를 정리하겠습니다.   
  
1. 축복을 실제로 주시는 분 하나님    
2. 축복의 통로가 되어 전달하는 사람, 이전엔 아브라함, 지금은 이삭    
3. 축복을 받는 사람 야곱 혹은 에서    
    
이 관계에서 진행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삭이 이 축복의 편지를 에서에게 전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와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자신이 에서라고 하여 이 축복의 편지를 받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편지를 잘 전달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에서가 온 이후에 두려움으로 떨며 자신이 축복의 편지를 에서가 아닌 이삭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떨림 속에는 편지의 원 수취인이 이삭이었는데 자신이 에서에게 전하려 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굳이 한 가지 무거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번 질문은 윤리적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이 담긴 편지를 썼고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이삭에게 맡겨 놨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 편지를 에서에게 전달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야곱은 그 편지를 받고 싶어 했고 리브가와 동시에 이삭을 속이고 그 편지를 받을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편지를 받는 것을 그냥 지켜보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원래 의도대로 그 편지는 야곱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정해진 결과를 위해 중간의 과정에서 악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묵인하실까? 혹은 그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야곱과 리브가가 이삭을 속이는 악함을 사용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종종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의 악함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파라오에게 히브리 민족을 데리고 나가게 해 달라는 요청에 파라오는 마음을 닫고 목을 굳게 하는 악한 대응을 하는 모습이 있었고 그런 악함을 하나님이 허용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자리 잡을 때 가나안 민족들을 가시와 채찍으로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시기도 하셨습니다.

앗시리아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되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들어 유다를 멸망 시켜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대신해 죽어야 하는 일을 위해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넘기는 악을 행했는데 그것조차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도 들어 쓰신다”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득이한 조금의 거짓말이나 희생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악도 사용하신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야곱과 리브가의 거짓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거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하셨다는 입장입니다. 이 경우 리브가가 과거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야곱에 대한 말씀을 이루기 위한 선의의 거짓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 했던 그 악함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어 야곱의 가족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시는 섭리라는 이 고백 속에서도 형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사용했던 악함이 결국 좋은 결과, 선한 결과를 낳았다는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이들은 종종 도덕과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침묵하거나 그 일 어딘가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며 동조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문제 앞에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바로 이런 지점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이 악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시는 가에 대한 부분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선과 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선과 악, 도덕과 윤리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판단하려 할 때 우리는 그 기준을 무엇으로 정할까요?

그것은 개인의 문화적 배경, 정서적 배경, 역사적 경험, 학습의 결과, 개인의 기질 등 다양하고 복잡한 것들이 얽혀서 만들어진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리브가와 야곱이 이삭을 속였다는 것을 계속 나눴습니다. 저의 기준에서 그것은 분명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틀림없이 어떤 누군가는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리브가는 자신이 도덕적 순리를 깨면서 죄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저주를 받을 각오를 하면서 야곱에게 축복을 주고자 했던 숭고한 사람이라 판단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처럼 우리 대신 죄인이 되고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숭고한 일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해 악을 사용하신다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의 기준이 하나님이지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선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판단하려 할 때 우리는 혼란스럽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이 말은 상당히 위험한 말입니다. 그러니 좀 더 나누겠습니다. 

선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과 판단으로 좋다 나쁘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사람은 그 하나님의 선을 따지는 존재가 아니라 겸손하게 묻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일입니다. 그 일은 인간의 의지나 계획이나 소원과 결이 다릅니다. 누군가의 편이 되거나 누군가를 편애하시기에 행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리브가나 야곱이 누군가를 속이는 방법이 성공하도록 섭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나 야곱이 이삭을 속인 것이 하나님의 선 다른 말로 뜻을 이루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그리고 야곱에게로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2. 야곱은 그저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거짓을 선택했습니다. 
3. 리브가도 야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짓을 선택했습니다.
4.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이나 리브가를 결코 선하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모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이루시기 위해 악한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명백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악함도 사용하신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것으로 우리 자신의 악함을 변명하거나 명분을 만들 수 없습니다. 목적이 선하면 그 과정도 반드시 선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가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리브가나 야곱이 이삭을 속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리브가는 이 일로 더 이상 그 사랑하는 야곱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가정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야곱은 자신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인 대가를 인생에서 톡톡히 치릅니다. 험악한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 속이는 선택을 해서 복을 받았는데 험악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야곱에게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또 이후에 묵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굽은 막대기로도 곧은 선을 그리시지만, 막대기 스스로 굽어지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굽은 만큼의 책임을 물으십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늘 본문에서 인상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2.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거나 불편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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