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21-22]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야곱이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언급하고 싶지 않은 죄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르우벤과 빌하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경은 왜 그 일을 기록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보는 성경은 적지 않은 분량의 책입니다. 그만큼 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사실 성경에는 모든 일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어났던 일들을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기록해야 할 것과 기록하지 않을 것이 구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르우벤과 빌하 사이의 일도 기록될 것인가 기록되지 않을 것인가의 사이에서 하나님은 기록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흔히 거룩한 책,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 무엇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각각의 성경을 쓴 사람들은 많지만 본질적으로 성령님에 의해 조명된 것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 존엄과 위대함이 기록된 경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의 경전은 어떤지 모르지만 성경은 이상하게도 언급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곳에 가장 수치스러운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그런 기록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왜 기록되기를 원하신 것일까요? 한 줄 정도 기록하지 않아도 어떤 문제도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감추어져야 더 은혜로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부끄러운 것은 감추고, 숨기고 싶은 것은 꽁꽁 숨겨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숨기려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숨기시는 것이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추어지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전히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십니다. 부끄럽다 하여 있었던 죄를 없었다고 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은 것이 기록됨으로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르우벤이나 빌하가 특별히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리의 말할 수 없는 죄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비추어보는 투명한 거울이 됩니다. 말할 수 없는 우리 스스로의 죄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수치심을 주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상태가 그렇게 발가벗겨진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공개하지 못하는 감추고 지내는 죄는 무엇입니까?
- 그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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