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16-22]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야곱은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릅니다. 갑자기 의문이 듭니다. 왜 벧엘을 떠난 것일까요?
지난 시간 야곱의 한 줄 인생은 밧단아람에서 떠나 이곳 벧엘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 야곱은 벧엘을 떠납니다. 그러기에 왜 벧엘을 떠났을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런데 ‘에브랏’이 어디인지를 알면 조금 이해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에브랏은 [אֶפְרָת(에브라트)]입니다. 이는 ‘열매를 많이 맺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가 선지자가 이곳을 언급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계보가 이곳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나심까지 이어집니다. 그 놀라운 구원의 완성이며 시작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야곱이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가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아이를 가졌는데 해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난산이었습니다. 라헬은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라헬에게 산파는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라헬의 마음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라헬의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겨내는 말이었습니다. 앞서 라헬은 언니 레아와 모종의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레아가 야곱의 아들들을 낳았고 라헬은 아이를 갖지 못했었습니다.
그것은 라헬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그렇게 레아와 라헬의 종 빌하 그리고 레아의 종 실바를 통해 아들을 낳기까지 라헬은 아이를 갖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셔서 라헬의 태를 여셨고 비로소 라헬의 아들이며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살릴 요셉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요셉의 동생을 잉태하였습니다. 지금 그 아들을 낳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헬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라헬은 그 말을 듣고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베노니는 [בֶּן־אוֹנִי(벤오니)]라는 단어로 그 의미는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에서 라헬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들을 낳고 싶었던 라헬의 절절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결국 라헬은 아들을 낳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베노니를 낳다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라헬은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라헬의 묘를 만들고 기둥을 세웠습니다.
생각할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언제나 있었던 일이지만 잊고 있었던 일입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생명을 낳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는 일이지만 사실 그 과정에는 엄청난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라헬처럼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어 생명을 낳기도 합니다.
지금의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우리를 낳았고 우리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해 주셨던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늘 잊고 있었고 고맙다는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라헬은 그렇게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어 벤오니를 낳았습니다. 라헬에게 벤오니는 슬픔의 아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벤오니를 베냐민 [בִּנְיָמִין(빈야민)]으로 불렀습니다. 그 의미는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른손은 보통 권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것은 슬픔이 아닌 권능의 아들이라는 야곱의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장소가 예수님이 오실 베들레헴인 것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면에는 하나님의 슬픔이 담겨 있었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죽으심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의 권능이며 그 이름의 권능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야곱은 베냐민을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붙이셨으나 베냐민 족속은 ‘왼손잡이 용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민족을 구하는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도 사람이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능은 하나님께 속했고,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라는 연약함의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권능을 행하셨다는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묵상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믿음의 계보를 만나고, 우리를 위해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내신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에 권능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나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 여러분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십니까?
- 여러분의 가정의 영적 베들레헴은 어떤 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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