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6-8]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어 보니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이름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리브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가 나옵니다.
그리고 드보라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드보라를 장사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알론바굿이라고 부릅니다.
알론바굿[אַלּוֹן בָּכוּת(알론 바쿠트)]은 상수리나무를 의미하는 ‘알론’과 통곡을 의미하는 ‘바굿’이 만난 단어입니다. 번역하자면 ‘통곡의 상수리나무’ 정도가 됩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믿음의 족장들의 이야기에 계속 상수리나무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하고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재앙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던 곳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나무입니다.
이 세겜의 상수리나무는 야곱이 우상을 묻은 곳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벧엘에 있는 상수리나무는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인 드보라를 묻은 곳입니다.
왜 이렇게 상수리나무가 등장할까요?
그 이유는 가나안의 지형적 특징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많고 숲이 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배경이 되는 가나안은 물이 귀하고 메마르고 건조합니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듬성듬성 보입니다. 그런 나무들 중에 큰 덩치를 자랑하는 나무가 상수리나무입니다. 그런 까닭에 상수리나무는 일종의 광야의 등대 같은 역할, 이정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또한 이 큰 나무는 옆으로 넓게 퍼지면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광야에서의 나무그늘은 여행자들에게는 굉장한 선물이 됩니다.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면 서늘합니다. 싯딤나무도 우산 형태로 퍼지기 때문에 그늘을 잘 만드는 나무입니다.
그런 까닭에 상수리나무는 삶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한 곳도 이 상수리나무 아래 그늘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 모레 상수리나무인데, 모레라는 것은 [מֹרֶה(모레)] ‘교사’ 또는 ‘지도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모레 상수리나무는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고 듣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상수리나무는 [אֵלוֹן(엘론)]이라 부르는데 그 이름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El’이 들어갑니다. 그것은 이 나무가 하나님처럼 강인하고 강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와 맥을 이어가는 또 다른 이름이 ‘참나무’입니다. 상수리나무를 참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이 ‘참’이라는 의미는 진짜라는 의미입니다. 나무 중에 진짜 나무, 가장 가치 있고 견고한 나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참나무는 ‘오크통’을 만들어 와인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고, 참나무의 껍질은 코르크를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또한 표고버섯 균사가 자라기에 적합해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정리해보자면 상수리나무는 매우 크고 강인한 나무입니다. 그리고 흔하지 않아서 광야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을 이야기할 때 상수리나무가 등장하고 야곱이 이동하는 곳에도 이 상수리나무들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즉, 상수리나무는 그늘을 제공해주고, 목재로도 아주 훌륭하고, 쓰임새도 좋으며, 또 도토리 열매도 내어주고, 이정표의 역할도 합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나무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상수리나무와 같은 것이 있을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하고, 때론 나에게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삶의 유용한 것들을 제공해 주는 그런 나무, 크고 강하고 흔하지 않은 것…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엘론이라 불리는 상수리나무의 이름 안에도 존재하는 분, ’El’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의 삶의 이정표이며, 나침반입니다. 길을 잃지 않게 하며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합니다.
우리 인생의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쉼을 누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그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할때 어떤 이정표나 나침반을 활용하십니까?
-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가본 경험은 무엇입니까?
'묵상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묵상] 창세기 35:1~5 “고통이라는 메가폰” (1) | 2026.03.28 |
|---|---|
| [말씀묵상] 창세기 35:1~5 “야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2) | 2026.03.27 |
| [말씀묵상] 창세기 34:30~31 “마귀에게 틈을 내어준 결과” (1) | 2026.03.26 |
| [말씀묵상] 창세기 34:13~29 “증오와 살육” (1) | 2026.03.25 |
| [말씀묵상] 창세기 34:1~12 “폭력의 역사 2” (0) | 2026.03.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