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1-5]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의 야곱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가족들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들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일어난 일들을 책임질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도망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느꼈습니다.
어떤 상황은 우리에게 절망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정말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리스도인들도 깊은 어둠 속에 잠기겠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주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해버린 순간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망’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신 곳은 ‘벧엘’입니다.
그곳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 돌을 베고 잠을 잤던 곳입니다. 야곱은 그 돌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 불렀고 반드시 그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다고 서원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단을 쌓으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다시 한번 더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 같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야곱이 참으로 의지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야곱은 모든 사람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의복을 갈아입으라”
그리고 벧엘로 가자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에 함께하신 하나님께 그곳에서 제단을 쌓겠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움직입니다. 모든 이방 신상들을 다 가져옵니다. 귀걸이 등 이방 신상과 관련된 장신구들도 모두 가지고 나옵니다. 야곱은 그것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립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을 지키십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의 가족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선 한 가지를 묵상합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감싸듯이 품어주시고 피할 곳이 되어 주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시는 전능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순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덮어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악함에 대해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야곱의 가족을 보호하신다면, 이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온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에 대해 묵상을 해 볼 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정의로우심 안에서 은혜와 긍휼의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결코 죄를 덮으시지 않는 분입니다. 레위와 시므온의 죄는 결코 덮어지지 않습니다.
야곱은 훗날 죽음 앞에서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셨던 것처럼 야곱도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그때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축복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창49:5-7]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결코 축복이라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지은 죄가 평생토록 잊히지 않고 인생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므온과 레위처럼 죄인이며, 우리는 그래서 저주 아래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의 죄를 덮으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정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하신 일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어린양이 사람의 죄를 대신해 희생의 피를 흘리듯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대신 책임지는 선택을 기꺼이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죄는 그 죄에 합당한 결과를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반면에 큰 은혜와 긍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며 있는 힘껏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건지시는 분입니다.
오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시고 어떻게 책임지셨는지 그 한없는 긍휼과 은혜를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하나님께서 긍휼을 경험하신 일이 있으십니까?
- 누군가를 대신해 첵임져보신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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