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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창세기 38:8~22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4.

[창48:8-22]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8절을 읽는 순간 의문이 생깁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몰라봤기 때문입니다. 문맥상 야곱은 이미 요셉의 두 아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손자가 아닌 아들로 입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이 처음 보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몇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 견해가 바로 그 다음 문장에 나옵니다.

야곱도 그의 아버지 이삭처럼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곁에 있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한 야곱은 연로한 상태에서 눈도 잘 보이지 않았고 기력도 없는 상태에서 이집트의 총리로 바쁘게 살아가는 요셉을 죽기 전에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차에 하나님께서 요셉의 두 아들까지 만나게 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을 하려 합니다. 야곱이 눈이 잘 안 보이는 탓에 요셉이 두 아들을 야곱 앞에 가까이 가게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장면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정리해 보면 요셉의 시각에서는

- 야곱의 오른편에는 므낫세(장자)
- 야곱의 왼편에는 에브라임(차자)

가 위치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장자가 야곱의 오른손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계획과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야곱은 손을 엇갈려 뻗었습니다. 즉, 오른손은 왼편에 있는 에브라임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오른편에 있는 므낫세를 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말을 합니다.

요셉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그 행동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은 조금 순화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기뻐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יָרַע(야라)]입니다. 이는 악하다, 나쁘다, 해롭다, 걱정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그리 마옵소서”라며 야곱의 오른손을 잡고 므낫세 쪽으로 향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라며 요셉의 의도를 이해하지만 축복의 손을 바꾸지 않고 축복을 합니다.

야곱에 의한 요셉의 두 아들의 축복은 이렇습니다.

- 공통 축복
  -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진 언약의 축복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이어지기를
  - 야곱의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보호가 손자들에게도 이어지기를
  - 땅에서 번식되기를

- 므낫세에게 준 축복
  - 큰 민족이 될 것이라
  - 강한 지파가 될 것이라

- 에브라임에게 준 축복
  - 아우이나 므낫세보다 큰 자가 되고
  -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

야곱은 그렇게 장자인 므낫세와 차자인 에브라임의 축복을 뒤바꿔서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 흐르는 질서나 상식적인 가치관들과 실제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일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장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장자’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장자는 상속을 받음에도 훨씬 많은 지분을 가집니다. 그 집안을 대표하고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런 까닭에 야곱도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소유하고 싶어 했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타나는 일들은 장자의 중요성이 분명히 강조되고 장자가 실제로 중요하지만 특이하게도 장자가 아닌 차자가 선택이 되고 차자가 이어가는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 중 차자인 이삭에게
-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 야곱에게
-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에게
-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중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이상하지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장자권은 장자로 태어난 이에게 주어지는 대표성의 질서입니다. 장자권 안에는 상속의 권리, 가문의 대표성, 언약 계승의 우선권 등이 포함됩니다. 장자는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며 신분이나 계급처럼 구분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규칙을 넘어서 선택해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과 인간적인 어떤 질서, 관습을 초월해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터무니없거나 인간의 관습과 기대를 완전히 무시하시는 것은 또 아닙니다. 왜 하나님의 선택이 관습을 넘어서게 되었는지는 그들의 삶이 어느 정도 답을 보여 줍니다.

요셉은 장자인 므낫세가 장자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에브라임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자신도 형들이 있음에도 다른 형들보다 두 몫의 상속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는 분임을 스스로가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요셉의 삶과 믿음, 그리고 형들의 삶과 믿음을 지금까지 봐 왔습니다. 중요한 지점은 요셉의 성격이나 삶의 태도,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응답,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여정을 묵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은 주어진 여건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장자라는 물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자신에게 이양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역시 오늘 우리도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의 연수나 직분, 종교적 삶의 태도나 업적을 내세우는 교만은 내려놓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기억하며 겸손의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묵상을 위한 질문]

1. 이삭, 야곱,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2.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서 발견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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