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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골로새서

골로새서 3:5~6

by 기대어 보기를 2025. 5. 28.

[골3:5-6]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십시오. 지체는 *μέλος(멜로스)* 라는 단어로 몸의 부분인 손과 발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손과 발을 죽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의미는 

- 음란 *πορνεία(포르네이아)* 성적부도덕
- 부정 *ἀκαθαρσία(아카다르시아)*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더러움
- 사욕 *πάθος(파도스)* 정욕 또는 절제되지 않은 열정
- 악한 정욕 *ἐπιθυμίαν κακήν (에피쉬미안 카켄)* 악한 욕망
- 탐심 *πλεονεξία(플레오넥시아)* 더 가지려는 욕망이며 이것은 
- 우상숭배 *εἰδωλολατρέια(에이돌롤라트레이아)* 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ὀργή(오르케* 가 임합니다.

많은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땅에 속한 것이며 우리의 지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이전에 행했던 것들입니다. 각각의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나누지 않겠습니다. 다만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6장 24절과 누가복음 16장 13절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더 가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재물 혹은 물질은 곧 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거나 끊어내거나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것은 금욕주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금욕주의와 죄를 멀리하는 것의 차이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만날 때 금욕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쉽습니다. 본문도 죄를 ‘땅에 있는 지체’라고 표현을 했고 그것은 우리의 ‘몸, 신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혹은 사람들이 음란을 추구하고 부정한 일을 행하고 사욕을 채우는 행동을 하고 악한 정욕을 품고 끊임없이 탐심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몸 또는 육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죄악시 여기고 또 그런 것을 추구하는 육체를 악하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는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지주의적 관점과 만나고 금욕주의가 추구하는 것과 만납니다. 육체의 욕망이나 쾌락을 억제하고 거부함으로써 정신적이고 영적인 순수함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금욕주의입니다. 

그런데, 땅의 있는 지체를 죽이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육신을 억압하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육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고 하나님이 손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이 된 특별한 사랑을 받을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육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금욕주의가 육체를 억압하여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죄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억압하고 절제하는 방향으로써 죄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해지기 위한 방향으로 죄를 넘어서 선함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로 ‘성’은 악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바른 관계안에서의 ‘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절제하고 멈추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기 위한 선함으로 나아가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땅에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고 그것과 싸우게 하는 것은 ‘율법’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의 죄를 결코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너는 죄인이다’라는 사실만 깨닫게 해 줄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죄와 마주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곁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땅에 있는 지체 중에 여러분의 삶에 가장 많이 묻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땅에 있는 지체에 대해서 돌아서서 위에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떤 단어들입니까? 그리고 그중에 여러분들이 더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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