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0장을 먼저 읽으시고 11장을 읽으시면 조금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창10: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세기 10장에서 이미 여러 나라와 백성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 비평적 해석이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10장과 11장은 시간 순으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기록이 한 번이 아니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된 것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이 10장과 11장도 순서적인 기록이 아니라 결과와 원인과 같은 주제 또는 두 장의 대비를 통해 행간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10장의 기록은 11장 사건 이후에 있은 이이며 10장에서 언어가 나뉘게 된 원인을 11장에서 설명하는 구조입니다.
또한 10장에서는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를 통해 노아의 후손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며 다양한 언어, 다양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면 11장은 인간의 교만으로 하나 되고자 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가셨다면 11장에서 인간은 하나가 되려 했습니다. 그 하나 됨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하나 됨에 하나님이 배제되었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온 땅에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이 나뉘기 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하나의 언어 때문에 노아의 후손들은 스스로를 위한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 거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벽돌을 만들어 쌓고, 그 사이에 역청을 바르고, 성읍과 탑을 건설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과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10장의 말씀을 기억하신다면 11장에 관련된 인물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구스를 낳았고 구스는 니므롯을 낳았습니다. 이 니므롯은 세상의 첫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힘과 용맹함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날 땅에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를 다스렸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학자들은 11장의 바벨사건은 이 니므롯과 관련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셈과 야벳은 그런 관점에서 바벨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바벨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에 셈과 야벳의 후손들도 참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시 말씀을 보면 그때에 그들은 성과 탑을 쌓았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고전 영화에서 이 장면이 나왔는데 탑을 쌓는 중에 사람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용사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활을 하늘에 걸어 놓아 평화를 선언하셨는데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화살을 날리며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게 하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하나님도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한 행위는 여러모로 노아의 홍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은 홍수를 내려 땅을 심판하셨습니다. 물에 잠겨 숨 쉬는 모든 생물은 죽음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탑을 하늘 높이 쌓자는 것은 그때와 같은 홍수에서 살기 위한 비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벽돌 사이에 역청을 바라자고 말합니다.
그 역청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때 나무로 칸들을 막고 그 안팎에 칠했던 것이 역청입니다.
또한 모세를 나일강에 떠내려 보낼 때 갈대 상자에 칠했던 것도 바로 역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청은 단순히 건축재료, 방수를 위한 재료가 아니라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보호막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즉, 바벨탑은 인간들이 만들어 쌓아 올리는 방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그들이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시작했고 그 이후로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며 중간에 언어를 혼잡하게 해 버립니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늘까지 탑을 쌓을 것이라 본 것일까요? 그러면 탑을 쌓지 못하게 하시려고 언어를 흩어 버린 것일까요?
바벨탑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 수 없던 고대사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것을 상상만 하고 있는데 저는 우리 시대가 이때의 바벨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는 지금 고도의 지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분야에도 과학적 진보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희소식처럼 들리지만 어떤 것은 윤리와 도덕을 넘어 신앙의 관점으로 창조질서에 위배된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어 고민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은 또 바벨때와 같이 인류를 흩어버리실까요?
하나님은 왜 바벨에서 인간을 흩으신 것일까요? 하나는 분명합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어서 두려워하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해도 신앞에서는 그저 피조물이고 우주에서는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어를 왜 흩으신 것일까요?
저는 사람들의 연합함에 하나님이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은 홍수와 같은 비극을 후회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무기의 상징을 갖는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걸어놓아 평화의 상징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후손들 즉, 당신의 피조물인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사람들이 스스로의 하나 됨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생각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마음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고도의 지식을 통해 점점 신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의 존재는 신으로부터 지어진 존재이며 하나님이 주신 호흡이 아니면 그저 생명 없는 육체이며 흙으로 돌아갈 몸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근원적으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완벽하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언어를 흩으신 하나님은 그 순리의 관계를 원하셨기 때문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의 삶에서 소통과 흐름이 막히고 답답한 지점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삶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바벨탑을 쌓는 것 같은 일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었나요?
2.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실패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3. 하나님과 함께 탑을 쌓는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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