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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2:3~14 “경외”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 21.

[창22:3-14]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경외[יָרֵא(야레)], 기본적으로 ‘두려워하다’는 의미와 ‘숭배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경외라는 말은 어떤 존재 앞에 떨며 두려워하며 숭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공포스러움과 동시에 존경하고 기뻐하며 그 장엄함에 대해 경탄하고 절대적인 무언가에 압도되어 느끼는 감정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진 감정이며 신앙의 태도입니다. 

언젠가 저는 ‘하나님의 경외’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에 누군가는 신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신학적으로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어떤 존재에 대해서 경외라는 감정이나 태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몰라서 ‘하나님의 경외’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독자 이삭도 하나님께 드림에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태도와 순종, 그 마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셨다고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보인 태도가 경외의 태도이며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나누었던 묵상을 잠시 끄접어와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나무위에 결박해 올려놓고 죽이고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물론, 이삭이 죽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일은 결코 아니셨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그의 손을 급하게 멈추게 하십니다.

이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 위(십자가)에 결박당해 매달리도록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 매달리기 전 하나님께 이 잔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또다시 자신의 원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준비하셨으나 예수님을 대신할 다른 양은 준비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대신할 숫양이 바로 예수님이시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말에 순종하는 모습이 경외라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에 침묵하셨고 예수님은 그 죽음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모습이 경외라면 하나님이 취하신 모습도 경외입니다. 물론, 여전히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경외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은 경외의 감정을 느껴보셨습니까? 언제 어떤 상황에서 느껴보셨습니까?
2. 하나님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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