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성경 말씀 중에는 읽기에 불편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말씀 중 하나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유는 이삭을 모리아 땅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사악한 종교적 행위로 존재했던 ‘인신제사’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번제란 [עֹלָה(올라)]라는 단어로 제단 위에서 드리다, 위로 올라가다는 의미입니다. 레위기를 펼쳐 들면 1장 11절에서부터 번제에 대한 규례가 나옵니다.
동물을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인데 그 과정에서 동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는 등의 과정이 있습니다. 동물이라도 사실 매우 보기 힘들고 끔찍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동물도 아닌 사람을 그것도 아브라함의 아들을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는 이유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시험하시려고 하시는 것 입니다.
시험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נָסָה(나싸)]라는 단어인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역경을 통해 시험하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냄새를 맡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모로 신중해지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말씀을 단편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순종을 시험하기 위해 하신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전제아래 말씀을 읽으면 사실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순종을 시험한다는 말 안에서 우리는 윤리적 판단이나 도덕적 사고를 내려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이 일을 일반화 즉,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있다는 방식,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이나 순종을 확인하시기 위해 시험을 주신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종종 기독교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방식으로 악한 일들이나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보통은 폭력이 약자에게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약자들에게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가령 이런 방식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권력의 구도에서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너의 믿음을 보여봐라!”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강요하고 빼앗교 유린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당할 때 심지어 악한일에 피해를 당할 때조차 하나님의 시험 혹은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로써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어떤 목적을 이루어감에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목적이 선하면 과정도 반드시 선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테스트와 같은 위험한 말들, 믿음 있음을 보여주어라 하는 알 수 없는 부담들이 주어질 때 우리는 도덕과 윤리라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종과 믿음을 요구할 때 그것이 부당함을 견디어내거나 혹은 악한 일을 묵인하거나 또는 우리가 악한 일을 하도록 밀어 넣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약자의 관점에서 기억해야 할 내용입니다. 부당한 요구를 믿음의 시험 혹은 하나님의 테스트라고 생각하며 견디어내는 사람들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왜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걸까요?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들의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것을 견디어내는 이유도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을 견디어내면, 믿음을 증명하면 그다음에 무엇이 있는 걸까요?
혹 믿음을 보여주었으니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믿고 순종했으니 복을 주신다는 어떤 공식과 같은 결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설사 그 중간 과정이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거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참고 견디면 복을 받는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보상을 기다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면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악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와 같은 요구, 가령 하나님께 당신의 재산을 바쳐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열심을 증명해 보아라, 하나님이 당신을 지금 테스트하고 계시니 그 시험에 합격하도록 무언가를 해야 한다와 같은 요구나 생각에는 정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선함은 목적과 과정 그 모든 것이 선합니다. 그 선함이 우리의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거나 차원이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시는 분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믿음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요구를 당한 일이 있습니까?
2. 뉴스나 미디어와 같은 곳에서 믿음이라는 이유로 일어난 악한 일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3. 피해자들은 왜 벗어나지 못한 걸까요?
4. 피해자들 중 벗어나지 못했던 불손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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