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3-14]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고 있는 이삭을 깨웁니다. 그리고 두 종과 함께 장작으로 쓸 나무를 쪼개어 묶습니다.
아들이 아니라 독자라는 표현을 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은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눈빛을 발견했을까요? 아니면 평소처럼 아버지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알았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깨우고 준비를 해서 떠나는 그 시간, 그 발걸음이 너무나 무겁고 긴 시간이었을 것인데 성경은 그것을 단 한 절로 기록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한절 사이사이에 긴 침묵이 가득히 매워져 있습니다.
너무나 큰 일을 마주할 때에는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고 도무지 표현할 수도 없는 중압감에 짓눌려 버립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종들을 데리고 삼일 길을 걸어갔습니다. 가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삼일 동안 갔을까요? 어떻게 발이 땅에서 떨어졌을까요?
마침내 모리아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과 나귀를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과 둘이서 예배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이삭에게 지웁니다. 아브람의 손에는 불과 칼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침묵이 흐릅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서 아브라함의 간절함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다음 이야기는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을 만한 곳에 도착해 제단을 쌓습니다. 이삭도 함께 도왔을 것입니다. 제단 위에 나무를 벌여 놓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묶어서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참고로 유대인들의 주석인 미드라시 라바에서 이 내용을 찾아보면 이런 관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Akedah(아케바)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이삭을 결박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미드라시 라바에 의하면 이삭은 20세에서 35세 사이의 청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올라가는 그 장면을
*"한 사람은 잡으러 가고(도살자), 한 사람은 잡히러 가지만(희생물),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였다. 이삭은 자신이 제물이 될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똑같은 기쁨으로 제단으로 향했다."*
라고 해석합니다. 이삭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제단에 묶일 때에 이런 말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저를 단단히 묶어주십시오. 혹시라도 제가 죽음의 공포 때문에 몸부림치다가 아버지를 다치게 하거나, 제물에 흠이 생겨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어디까지나 참고입니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고 갔던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를 믿어 순순히 희생물이 되려고 했는지, 아버지가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살인자로 보였는지, 죽음의 공포 앞에 배신고 충격을 받았는지, 아브라함은 또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하나님은 왜 시키신 것일까요?
물론, 우리는 그다음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말대로 수풀 사이에 하나님께서 준비한 숫 양으로 번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끔찍한 시험을 하신 것일까요?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이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어깨에 번제에 쓸 나무를 지워주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나무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묶여서 제단 위에 올려졌습니다. 그다음 일어날 일은 피를 쏟고 번째로 드려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삭이 느낄 두려움과 공포, 그것을 예수님도 느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처절한 기도가 그것 때문입니다. 십자게에서의 부르짖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그 마음, 그 아픔과 고통의 마음이 크기로 표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앞서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잔인한 시련을 주셨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고 이삭에게는 그 일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대신할 숫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멈추시지 않았고 대신할 다른 것도 없었습니다.
결코 일반화시킬 수 없는 일이지만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한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묵상하게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이삭을 데리고 번제 할 곳으로 오르던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2. 본문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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