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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1:24~34 “브엘세바 우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 16.

[창21:24-34]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아비멜렉의 화친 요청에 아브라함은 그의 요구대로 하나님께 맹세함으로 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이야기 하나를 꺼냅니다. 아브라함이 꺼낸 이야기는 우물에 대한 것입니다. 

이전에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야기를 꺼냅니다. 성경에는 ‘책망하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יָכַח(야카흐)]라는 논증 하다, 입증하다, 논하다, 고치다, 판단하다, 분쟁하다 등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는 ‘항의하다’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것 같습니다.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이전 아비멜렉의 전적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비멜렉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이전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던 부분을 잠깐 묵상해 봅니다. 왜 그랬을까? 기본적으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약간의 미안한 감정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껄끄러웠을까요? 사라의 사건 때문에 아비멜렉과의 관계는 편한 관계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 아브라함은 거류민 즉. 그 땅에 잠시 기거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팠는데 그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아마 그 땅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비멜렉의 사람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우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 ‘누지토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1925~1931년 사이 요르간 테페에서 발굴된 5,000~20,000여 개의 점토판입니다. 이 점토판에는 당시의 과습법과 사회 제도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 내용 중 오늘 본문과 관련된 문화 토지 매매나 우물 등의 소유권에 대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지만 순수한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우물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토대고 그 주변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의 종들이 그것을 빼앗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곤란하고 불편한 일이었는데 사회적인 약자로써 또 이전의 사건으로 아비멜렉에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브엘세바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아비멜렉에게 양과 소를 가져다가 화친의 언약을 세우고 또다시 일곱 암양을 아비멜렉에게 줍니다. 

그것은 일종의 증거물입니다. 브엘세바의 우물이 아브라힘의 것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증거로 아비멜렉에게 줍니다. 아비멜렉은 양을 받음으로써 아브라함의 우물이라 확증해 주었고 아브라함은 그 땅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얻기 위해 에셀 나무를 심어 그곳에서 머물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특별히 신앙적인 이야기나 교훈적인 부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 사람들과의 관계와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비멜렉에 대한 아브라함의 복잡한 감정, 그 감정 때문에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거나, 참고 있거나 했던 부분, 특히 지위적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당할 수 있는 불편함, 특별히 내가 잘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주장할 수 없는 그런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억울함이나 불편함이 있었지만 어떻게 해결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시 새로운 우물을 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물도 또 빼앗길지도 모르는 불안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알았는지 혹은 기도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브라함을 품고 사랑하시며 그의 문제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브라함에게 화친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아브라함의 억울함을 풀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의 우물에 대한 소유권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에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잘못도 많이 하고 실수도 많이 하며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부끄러운 우리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긍휼의 마음으로 삶을 만지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브라함처럼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앓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느끼시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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