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8-17]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에덴동산은 ‘낙원’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드셨고 그곳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동식물의 생명의 젖줄인 강이 흘러나갔습니다. 그곳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마도 가장 궁금한 것은 ‘실제로 에덴동산이 어디에 있느냐?’ 일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우리에게 굉장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이끌어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낙원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영화나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불로장생과 관련된 신비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 대한 지리적인 위치를 연구하거나 이에 대한 논증들이 있습니다. 메소포타키아지역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어느 지점일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고 페르시아만 쪽에 위치한 어느 지점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것에서 실제 있으나 감추어졌거나 혹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이나 공간이라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에덴동산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부의 견해로는 상징적인 장소이거나 신화적 서사가 전개되는 공간 정도로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다양한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앞에서도 나누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닙니다. 객관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밑바탕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에 기록된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놀라운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담과 그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에덴동산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또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묵상해 보겠습니다.
지난 묵상에서 나누었던 주제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와 창세기 2장의 창조 순서가 다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순서로 보면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아름답게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충분히 온전하고 좋은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곳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창세기 2장은 1장의 창조의 순서나 내용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공통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그곳은 낙원입니다. 사람이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곳입니다. 심지어 생명나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낙원을 만드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1장과 2장에서의 창조는 순서는 다르지만 하나의 원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 그 모든 것을 준비하는 과정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에게 부모는 온 우주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14:1-3]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근심이 없는 집, 거할 처소를 준비하시고 그것이 준비되면 그곳에 우리들을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창조주 또는 다른 말로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실제적인 에덴동산이라는 장소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과 아담이 그의 아내를 만났던 공간입니다.
이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실제적인 에덴동산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공간이 에덴동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은혜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에덴동산이 아닐까요?
두 번째는 하나님이 아담을 낙원에 두셨지만 놀고먹게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15절에 하나님이 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경작’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낙원은 경작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실제로 경작이라는 말은 [עָבַד(아바드)]라는 히브리어로 노동하다, 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이 노동을 하게 되고 일을 해야 먹고살게 되는 것은 이후에 일어난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에 지워진 아담의 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경작은 생존을 위한 노동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맡기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문화명령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의 경작하고 지키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파괴적인 힘으로 지배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2장의 표현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습니다. 경작, 일하라, 노동하라 그리고 지키라[שָׁמַר(샤마르)]는 표현이 좋습니다.
앞에서 온 세상을 향한 문화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세상을 관리하고 보존할 책임성에 대해 묵상했다면 2장에서는 에덴동산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놓으신 공간 그것은 우리의 물리적 공간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거하는 영적인 공간을 지키기 위해 땀 흘려야 하는 또 하나의 책임성을 발견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에게 에덴동산과 같은 공간이 있습니까? 그곳은 어떤 곳입니까?
2. 여러분의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묵상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묵상] 창세기 2:16~17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 (0) | 2025.10.31 |
|---|---|
| [말씀묵상] 창세기 2:25 - 벌거벗음 (0) | 2025.10.30 |
| [말씀묵상] 창세기 2:4~24 좋지 아니하니 (0) | 2025.10.28 |
| [말씀묵상] 창세기 2:4-24 창조기록이 달라요 (0) | 2025.10.27 |
| [말씀묵상] 창세기 2:1~3 안식 (0) | 2025.10.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