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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4~24 좋지 아니하니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0. 28.

[창2:4-24]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서 하나님의 평가는 언제나 “보시기에 좋았다” 였습니다. 그런데 18절에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좋지 않았다는 말은 앞에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טוֹב(토브)좋은, 선한]에 부정하는 의미인 [לֹא(로)~하지 않다]가 붙은 말입니다. 

구약성경의 호세아 선지자가 아들을 낳았을때 그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의 ‘로’가 바로 ~하지 않다는 부정의 의미로 ‘로암미’라는 이름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아담 즉,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라는 단어는 [בַּד(바드)]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는 ‘분리’, ‘한 부분’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בָּדַד(바다드)]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단어는 나누다, 분리하다, 고독하다, 외롭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모순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은 남자였고 혼자였습니다. 그걸로 온전한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 아담이 혼자인 상태를 뜻하는 말이 ‘나누어졌다, 분리되었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어 ‘어떤 부분, 일 부분 즉, 온전하지 않은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떨어져 나간 일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려고 할때 처음부터 남성과 여성이 서로 돕는 배필로써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아담을 만들어놓고 보니 아담이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여성을 추가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의 계획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돕는 베필로써 살아가도록 하셨는데 아직 아담의 배필이 없어서 좋지 않아보였다는 의미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 안에 계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관계 안에 속해있지 않고 홀로 분리된 채로 혹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좋다고 말하시지 않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형성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가 ’부부‘이며 이를 통해 ’가정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세대를 이어 그 생명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돕는 배필’의 의미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돕는 이라는 말은 [עֵזֶר(에제르)]라는 단어인데 원조, 도움, 조력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필을 배우자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나를 돕고 워조해 주는 조력자로써의 배우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부장적인 관점에서 아내는 남편을 돕는 조력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돕다는 의미는 맞습니다. 그런데 ‘배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נֶגֶד(네게드)]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의 맞은편에, 앞에, ~대하여’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위치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누군가의 맞은편에, 누군가의 앞에 혹은, 누군가에 대하여라는 의미입니다. 

즉, 배필이라는 말은 단순히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나에 대하여 맞은 편에 서서 나를 마주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시소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시소에 한쪽에 내가 서 있다면 그 시소는 내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런데 나에 대하여 맞은편에 나를 향해 누군가 서 있게 되면 그로 인해 시소는 균형을 이루게 되고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게 됩니다. 

마주 보다, 앞에 있다는 의미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균형 잡힌 관계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관계는 아내는 남편을 돕고 조력하는 역할을 하는 배우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 균형을 잃은 부분을 돕고 채우며 균형을 이루게 해 주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돕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새 번역 성경은 ‘돕는 배필’을 ‘알맞은 짝’이라고 번역했는데 잘 번역한 것 같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알맞은 짝 이며, 서로 돕는 알맞은 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부부에만 국한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서로를 세워주는 존재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늘 배우자 혹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알맞은 도움이 되었습니까?
2.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알맞은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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