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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2:4-24 창조기록이 달라요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0. 27.

[창2:4-24]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어쩌면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절에서 3절까지는 창세기 1장의 창조를 다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기록으로 천지창조가 완성된 내용으로 정리가 된 듯합니다. 그런데 4절부터 다시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읽어 보면 1장에서와 창조기록과 다릅니다. 

2장에 나타난 창조의 진행 순서는 이렇습니다. 
- 땅에는 비도 내리지 않았고 식물도 없었다. (5절)
-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기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7절)
-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를 만드셨다. (9절)
-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셨다. (19절)
-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창조하셨다.(21-24절)

1장에 기록된 창조의 순서와 다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말씀을 만나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본문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견혜와 해석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학자들의 역할이고 평범한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는 의문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와 같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서가 그렇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기록했는데 각 복음서마다 보여주는 예수님의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에 성경은 신빈성이 떨어진다고 보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사건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더 그 사건을 더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4명의 증인이 하나의 사건을 동일하게 진술하면 그것은 서로 미리 맞춘 것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반면, 핵심은 같지만 그 세부 내용이 조금씩 다르면 그것은 실제의 경험이라고 봅니다. 

그와 같은 것을 ‘상호 보완적 증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똑같은 진술이 일어날 것 같지만 사실 사람들은 각각 하나의 사건을 보고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같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빛’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빛‘이라는 것을 물리학에서는 ’파동‘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양자 물리학에서는 그것을 ’입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는 빛을 ’존재의 인식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고 신학자는 빛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관점, 각자가 하나의 대상 또는 사건을 바라볼 때 그것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다름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성경은 그런 관점의 차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차이에서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다르게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심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나 순서가 다릅니다. 

1장에서는 질서정연하게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2장에서는 창조에 대한 기록이 간결하게 기록된 반면 창조의 사건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들어가 있습니다. 

- 에덴에 동산을 만드신 이야기 (9절)
- 에덴에서 비롯된 4개의 강(10-14절)
-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9절)
- 에덴에 있는 나무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16-17절)
- 아담에게 맡기신 일(19절)
- 여자를 만들게 된 이유(18절)

1장은 천지창조에 대한 거대한 대 서사라면 2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집중하면서 세세하면서 작은 에피소드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의문이 아니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다름에서 오는 차이입니다. 같은 사건인데 그 진술이 다릅니다. 그러나 진술이 다르다 해서 핵심 요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장이든 2장이든 동일하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1장은 하나님께서 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2장은 그 하나님이 사람에 더 집중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동산을 준비하시고 각종 식물들을 준비하시고 또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어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 아담의 삶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함께 할 배필을 만들어 가정 공동체를 만들어 주시는 세심하고 따뜻한 하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아끼시고 친밀하게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고 있으며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 부분에 해당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이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 여러분의 지인이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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