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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7~10 네가 어디 있느냐?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1. 3.

[창3:7-10]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잇샤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이들이 겪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옷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벗은 줄을 알았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다른 의미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하나님 앞에는 벌거벗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을 행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을 숨기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고 우리의 실수가 발각되기 전까지는 감추려 합니다. 

그것이 수치나 부끄러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아담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추어야 할 것이 생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벌거벗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아담과 잇샤는 자신들의 몸을 숨기기 위해,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무화과나무잎은 비교적 넓게 펴지고 성인 손 두 개를 모은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몸을 가릴 수 있는 치마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수치심은 하나님에 대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잇샤에게, 잇샤도 아담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화과나무잎으로 자신들을 가렸고 바람이 불 때 하나님은 동산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늘 보이던 아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잇샤와 함께 동산 나무들 사이에 숨어서 하나님을 피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담이 숨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찌 하나님께 피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영적상태이기도 한 것을 묻는 것입니다. 

아담이 있어야 할 곳은 바람이 불면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담은 그 하나님 곁에 가지 못합니다. 가지 않습니다. 나무 사이에 숨어서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담아서 창조하셨는지를 묵상했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이 하나님을 피해 숨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오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듯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어떤 시점에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무엇을 하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스스로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푯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묵상을 위한 질문]
1. 최근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디쯤에 있었습니까?
2. 하나님께로 나아가면서 숨기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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