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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11-19 죄의 결과와 사랑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1. 5.

[창3:11-19]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죄가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 묻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 다 알고 계셨지만 그것을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말은 사실입니다. 잇샤가 아담에게 주니 아담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잇샤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잇샤가 대답합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잇샤의 대답도 맞습니다. 뱀이 잇샤를 미혹해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했습니다. 

아담의 대답과 잇샤의 대답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거짓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대화 속에는 어떤 태도가 느껴집니다. 

그 태도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 입니다.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의 말속에는 내 책임이 아니라 ‘이것을 먹게 한 저 여자, 저 뱀’ 때문이라는 항변과 함께 책임과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습 속에 쉽게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보다는 이유와 핑계를 대고 책임과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태도의 문제이지만 이런 태도를 보이게 된 이유를 묵상해 보면 ‘관계’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잇샤가 함께 돕는 베필로써 살아가기를 원하셨고 그들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관계 안에 들어가면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아담은 잇샤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잇샤도 아담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깨어져 버리니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즉, 죄가 드러남으로 사랑의 관계가 깨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관계는 좀 더 확대됩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조금 의문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뱀은 실제로는 흙을 먹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잘못된 것일까요?

‘흙’이란 [עָפָר(아파르)]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는 먼지, 마른땅, 무덤, 진토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말씀에서 흙이란 실제로 흙을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땅 위를 기어 다니거나 땅속으로 들어가면서 흙에서 뒹굴고 그 위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흙이 가진 의미 중에 하나는 먼지가 되고 무덤으로 들어가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드러납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게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흙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흙으로 빚어져서 생기를 받아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죽으면 그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흙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의미는 죽음을 먹는다는 의미이며 생명의 빛이신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잇샤에게 말씀합니다. 

“내게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한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여기에서 ‘너는 남편을 원하고’라는 말은 다른 한글 번역본들에는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잇샤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류 사회에 나타난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 가부장적 사회, 힘으로 지배구조가 만들어지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정리를 해 보면 모든 관계가 다 깨져 버렸습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의 과정이며 사랑의 모습인데 그것에 커다란 고통이 생겼습니다. 

서로 바라보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돕는 배필은 서로를 지배하려는 의도가 생기고 힘의 균형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채소와 과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하셨는데 이제 사람은 땀 흘려 땅을 경작하지 않으면 채소와 과일을 먹지 못합니다. 땅에서는 경작을 방해하는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납니다. 

그리고 사람은 흙에서 빚어져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죄’가 세상에 드러남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관계가 깨지고 무너지면 그다음에는 서로 상처 주고 서로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이 우리 사이에서 소멸하면 우리는 그렇게 부서져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관계가 단절된 뱀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뱀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원시복음이라 불려지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뱀 사이에 서로 무서워하거나 적대시하여 서로에게 행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관계가 뱀의 미혹으로부터 시작해 깨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아담이나 잇샤에 삶에 죽음과 저주가 있지만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과 책임을 그냥 방치해 두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께서 아담과 잇샤의 죄 즉, 사람의 죄를 대신 감당하려 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 일은 잇샤를 미혹했던 뱀에게는 원치 않는 일이고 그래서 잇샤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죽음으로 몰아갔고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죄가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일어나는 파괴적인 관계와 모습들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그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랑의 불씨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스스로를 돌아볼 때 죄의 결과와 사랑의 결과 중 어떤 모습과 태도를 평소에 많이 나타내시는 것 같습니까?
2. 지금 여러분에게 사랑으로 회복시키고 연결시켜야 할 깨져 버린 관계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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