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8-10]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이 대답합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죄를 지은 아담은 이제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두려워하다 [יָרֵא(야레)]는 떨다, 전율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경외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아주 좋은 신앙의 모습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경외의 신앙이 우리의 죄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에 기인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니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것보다 바람이 부는 좋은 때에 함께 동산을 거니는 부모와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따듯한 품을 가진 부모님이 되시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두려워 떨며 그 앞에 순복 하는 경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생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태도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아담과 잇샤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그것은 정말 두렵고 무서운 것이리라 생각이 됩니다.
저는 아들을 양육하면서 교육적 고민들을 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잘못된 곳에 있다고 여겨질 때에는 훈육한다며 엄하게 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과거의 아들을 훈육했던 일들을 바라보니 아들을 엄하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의 분노였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에게 원하는 것은 자녀가 좋은 곳에 있기를 원하는 것이지 자녀의 잘못을 윽박지르고 엄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후회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좀 더 사랑하며 회복의 방법으로 자녀를 가르쳤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원하는 목적은 자녀가 잘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그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시기 때문에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성자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바람이 불 때 동산에 아담과 같이 거닐었던 그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과 산책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2.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가실 계획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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