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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1:3~6

by 기대어 보기를 2025. 7. 8.

[엡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3절에서 14절까지는 하나의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을 구분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찬송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3절에서 6절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이 구간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성부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
- 하나님은 그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우리를 양자로 삼아 주시기로 미리 결정하셨다.
-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신다.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원초적이며 신학적인 메시지입니다.

잠시 묵상해 보겠습니다. 한 문장으로 결코 정리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가장 단순하게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신령한 복’은 꼬리에 꼬리물기를 통해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문장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단순하게 묵상하겠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신령한 복이 무엇일까요?
*πνευματικός(프튜마티코스) εὐλογία(율로기아)* 로 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이 복은 오늘 말씀 안에 여러 가지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충분합니다. 이를테면 

-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이미 아시고 선택하신 것, 
-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것, 
- 우리는 죄로 인해 심판받을 존재였으나 양자로 삼아 주신 것,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대가 없이 거저 주신 것 등입니다. 

어느 것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 하나를 붙잡고 묵상하면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바울의 입장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바울은 소위 총망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든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의 말씀에 의하면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예정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현실은 그 모든 부와 명예와 쌓아왔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도망 다니기도 하고, 지금은 로마에 끌려와서 재판을 받기 위해 가택에 연금되어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하나 잘못 선택해서 인생이 망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현실의 복을 기준으로 삼을때 바울은 망한 사람입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실 일이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낌이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유를 비롯해 많은 것들을 빼앗겼지만 오히려 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망했으면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도 신령한 복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복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신령한 복’을 가장 소중한 복으로 삼아야 합니다.  신령한 복을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신령한 복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슬픈 자기 위로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신령한 복을 추구하며 정말 현실에서 도피해 버리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신령한 복을 내면에 간직한 사람은 꺼지지 않은 등불을 내면에 밝혀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가지는 것이 신령한 복을 깨달은 사람의 내적인 강함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신령한 복을 본문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곱씹으며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더라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 찬송의 힘으로 삶을 바꾸어 내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      
1. 바울이 말하는 신령한 복 중에 마음에 와닿는 것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 바울의 찬송처럼 정리해 보십시오.
3. 여러분이 가진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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