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묵상해 볼 말씀이 많아서 조금 놀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평소 같다면 이렇게 많은 구절을 묵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 우리말 번역으로는 발견하시기 힘든 내용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3절에서 14절까지 평소보다 많은 구절을 읽었는데 사실 이 구절은 한 문장입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이 문장이 쉼 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문장입니다. 총 202 단어가 계속해서 ‘안에, ~돼, 이는’ 등의 단어로 계속 연결됩니다.
전체적으로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분이시며 ~을 하셨다는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글을 써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비슷한 내용을 나열하며 쓰다 보면 한 문장을 길게 쓸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런 경향이 있거나 학교에서 과제로 글을 써야 할 때 일정량의 물리적 분량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좋은 문장이란 단순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야 읽는 독자도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문장이 길어지면 초점이 흐려지게 됩니다. 논리적인 글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논리적인 글이 아닌 문학적인 표현이 가득한 하나의 긴 문장의 찬양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긴 호흡의 산문시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자유시라고 불리는 ‘주요한 시인’의 불놀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불놀이 시의 한 연입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감성적인 표현들을 계속 나열해 놓아서 내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와 같은 형식의 문장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 본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바울의 글과 같지 않습니다.
글쓴이의 감정까지 들여다보기는 어렵겠지만 바울의 글은 불놀이의 화자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어떤 현상을 끊임없이 나열하면서, 감탄 혹은 감동, 슬픔, 아름다움 등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듯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긴 호흡의 문장으로 쉬임 없이 써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문장은 성령의 감동에 사로잡혀 단숨에 써내려간 문장이라 보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는 감동을 쉬임없이 써내려간 것 입니다.
잠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그때의 바울의 상황이 어떠했을까요?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에 비해 바울을 둘러싼 환경은 바울을 옥죄어 놓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택에 연금되어 있었습니다.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에 도착한 후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외출을 하지 못하고 가택에 갇혀서 살아가게 됩니다. 로마의 병사가 바울을 감시했고 그 가택의 경우도 바울이 사비로 임대해서 지내야 하는 셋방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유가 박탈된 상태였고 그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피지는 않았지만 바울이 처했던 상황 속에서 성령의 충만함에 붙잡혀 찬송의 시를 써 내려간 바울을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써내려간 글이 있습니까?
3. 오늘 한 번 하나님을 향한 찬송 시를 써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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