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1-5]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렇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던 그때에 우리는 그 가운데(허물과 죄)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αἰών(아이온) 시대, 시간] 즉, 세상의 흐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듯이 살아가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바로 부연설명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것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혹은 앞부분을 인용하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그러니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는 것인데 사람을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영’을 말합니다.
궁중권세 잡은 자는 =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 입니다. 바울의 다른 서신에도 비슷한 언급들이 있습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공중권세를 잡은 자는 사탄이나 마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존재들은 하나님께서 제한적으로 허용하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욥기를 보면 하나님이 사탄이 욥을 시험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22장 2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예수님과 소위 최후의 만찬을 한 때, 예수님이 잡혀가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역시 사탄이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을 체질하여 흔들어 흩어 버리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권세(제한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공중의 권세라는 말 속에 ‘공중‘도 차이가 있습니다. 헬라어에는 하늘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οὐρανός(우리노스)]와 [ἀήρ(아에르)]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후자인 ‘아에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번역에서도 ‘공중’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공중이라는 의미는 하늘의 일 부분을 의미합니다. 대기층 정도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늘의 의미는 그것이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반면에 공중은 하늘의 하층정도에 해당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분 입니다. 물론, 공중이 물리적인 대기층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시 영적인 공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영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공중이라는 말은 눈을 들어 보이는 청명하고 높은 하늘의 의미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층과 같은 공간, 눈앞에 있으나 보이지 않는 물리적이고 영적인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 혹은 마귀는 그 공간에서 권세를 잠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사람들을 불순종의 자녀로 살게 합니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게 합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헬라인들에게 하는 말 입니다.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 너희가 죽었었던 그때에 너희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며 이 세상의 시간을 따라 살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이어갑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라는 말은 바울을 비롯해 유대인을 말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 구분은 에베소서 2장 11~12절을 보시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헬라인의 차별을 두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유대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어서 이 종교는 유대인의 종교라는 인식이 강했을 것 입니다. 그런 의미와 더불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앞 구절에서 말하는 허물과 죄로 살아가는 것이고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따라가는 것이며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삶입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똑같았다는 것 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우리가 살아 숨시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를 불순종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이 영은 공중에 존재하나 공기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그러나 공기를 늘 들이마시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인 것처럼 끊임없이 쉴사이 없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바울은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면 어떨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그때에는 그렇게 행했으나 지금은 행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지금도 그때의 그렇게 행했던 것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3. 우리의 믿음을 위해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공동체에 부탁하고 싶은 기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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