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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2:1~5 c

by 기대어 보기를 2025. 7. 17.

[엡2:1-5]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전에는 우리도(바울을 비롯한 유대인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도 다 그 가운데(허물과 죄)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오는데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의미하는 것보다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다른이’라고 번역된 것은 [λοιπος(로이포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남겨두다, 두고 가다, 모자라다, 부족하다’는 의미의 타동사인 [λείπω(레이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러니 다른 이란 구원의 의미와 연결 지어보면 구원에서 남겨진 혹은 버려진, 구원받기에 부족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 다른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입니다.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자들이고, 완전한 선이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허물과 죄를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바울은 헬라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이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우리도’라는 말에는 헬라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유대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굉장히 충격적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강력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아니냐가 그들에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것에는 아브라함의 자손도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도 다 허물과 죄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이야기 합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긍휼[ἔλεος(에레오스) 자비, 동정, 연민]이 풍성한[πλούσιος(플루시오스) 부요한, 풍부한]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ἀγαπάω(아가파오) 동사, 사랑] 그 큰 사랑[ἀγάπη(아가페) 명사,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입니다. (너희는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미 알고 계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알다’라는 개념을 담은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יָדַע(야다)] 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940회 이상 나오는 단어입니다. 

창세기 4:1절에 이 단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4:1절을 펴서 읽어 보면 눈을 씻고 봐도 ‘알다’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봐야 발견할 수 있는 단어 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말 성경에는 ‘동침하매’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앎‘의 의미는 단순하게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지식이나 인식이 맞으나 관계적인 의미, 경험적 의미, 성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관계적으로는 상대에 대해서 깊이 이해한다, 친밀히 알다, 경험적으로는 체험을 통해서 알다, 성적인 의미는 결혼한 부부로써 서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긍휼히 풍성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구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을 안다는 것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앎은 지식적으로 어떤 사실은 안다는 것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이고 감정적인 또는 삶에 나타난 어떤 경험을 통해서 알거나 성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로도 알고 가슴으로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앎은 어떤 앎입니까?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가슴으로 알았던 때는 언제입니까? 
2.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경험으로 알았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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