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1-3]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사랑의 다른 이름 ‘온유’
'온유'는 헬라어로 [πραύτης(프라오테스)] 입니다. 우리는 '온유'를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사람, 좀처럼 흥분하지 않고 화내지 않는 사람, 잘 포용해 주고 용납해 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를 오늘 성경이 말하는 '프라오테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50%만 맞는 것입니다. '프라오테스'라는 단어는 조금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를 설명할때 이 단어를 지나치게 노하는 것과 지나치게 노하지 않는 것 사이의 중용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온유함이란 분노하는 것과 방관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균형을 잘 이루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분노할 일에 대해서 분노할 줄 알고 분노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온유란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고통을 받을때 또는 고난을 당할 때에는 의로운 분노를 표출하지만 반대로 자기 자신의 부당한 대우나 모욕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용으로써의 온유의 의미를 알게되면 우리는 온유함에 대해서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게 됩니다. 제 자신을 이 단어의 의미로 살펴보면 저 역시도 온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고 또 인격적인 모욕을 받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온화한 미소로 모든 것을 받아넘기는 것이 온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정의가 무너지고 부정과 부패가 눈앞에 있어도 쉬쉬하고 시선을 피하는 것도 온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온유'함의 정 반대의 삶의 모습을 갖기 쉽습니다.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것에 대해서 방관합니다. 앞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피해가 없으면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자존심을 건들거나 나에게 손해를 주는 일에 대해서는 불편해하고 날카로워집니다.
그래서 온유함이란 '성격'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하는 '태도'입니다.
[πραύτης(프라오테스)]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길들여진 말을 의미합니다. 자연상태의 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말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 말에 대해서 '프라오테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프라오테스는 잘 길들여진 말을 의미합니다.
온유한 말이란 자신이 욕망이나 본능, 정열 등을 잘 통제할 수 있는 말을 의미합니다. 평소에 넖은 들판을 열정을 다해 달리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하여도 그 말의 주인이 달리라고 하기 전에는 결코 달리지 않고 참아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그 말 위에 올라타고 달리기를 원할 때에는 온 힘을 다해 질주하는 것이 바로 '프라오테스'입니다.
온유함이란 바로 이런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온유함이란 어떤 것일까요? 교회의 온유함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길들여진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분노할 때, 애통할 때에 분노하고 애통할 줄 아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참고 인내하라고 할 때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거칠지 않은 것이 온유가 아니며 유약한 것이 온유가 아닙니다. 온유함이란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품어야 할 때에는 따뜻한 품이 되었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뛰게 하는 일에는 전력질주해 나갈 수 있는 영적근육을 가진 것이 온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유해지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내 기분, 내 감정, 내 유익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온유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할 때 온유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오늘 하루 이 온유함의 의미를 붙잡고 살아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스스로의 온유함의 점수는 몇 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2. 주변에 온유함을 잘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스스로 온유함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황은 어떤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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