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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골로새서

골로새서 1:24

by 기대어 보기를 2025. 5. 7.

[골1:24-29]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편지를 쓸 때 사도바울의 상황은 로마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바울의 사역에 있어 후기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이 시점으로부터 약 3~4년 후 순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는 말은 바울이 실제로 고난을 받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어떤 부분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고난을 바울이 혹은 교회가 받아서 보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주님이 받은 고난에는 결핍이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완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5절은 오히려 고난이 차고 넘쳐서 우리에게 흘러넘쳤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어렵지만 흥미롭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다고 말하고, 여기에서 넘친 것은 *περισσεύω(페릿슈오)* 로 ‘풍성하다, 남다’는 의미입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남은’이라고 번역된 것은 *ὑστέρημα(휘스테레마)* 라는 단어로 결빕이나 부족을 의미합니다. 즉 채워지지 않았다는 의미 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풍성하다’ 고도 말하고 ‘결핍되었다’ 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어떤 양이 있고 그것이 충분하다 혹은 부족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 ‘동참하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도 흘러넘쳐서 그것을 감당함에 참여하는 것이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해 우리가 감당한 고난이 부족하여 충분하기까지 채워 넣는 과정으로써의 동참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의 양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과정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는 각자가 저야 할 십자가도 있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는 구원받기에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주님의 삶에 동참하는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감당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2.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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