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1:19]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오늘 본문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듯합니다.
‘충만’이라는 단어가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는 ‘충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충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πλήρωμα(플레로마)* 인데 그 의미도 ‘가득하여진 것’, ‘가득 찬 상태‘, ’완전함‘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충만‘이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가득찬 상태를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모든 완전함이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여전히 궁금한 것은 그 ’가득 찬 것‘, ’완전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장 안에 드러나지 않으니 어렵게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충만‘이라는 것이 무엇에 대한 ’충만‘이냐에 대한 몇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하나님의 신격, 본질, 본성‘과 같이 하나님의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 예수님 안에 충만하다는 의미입니다.
성자 예수님 안에 성부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충만함이란 부족함이 없는 상태, 가득 찬 상태,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골로새의 교회 공동체에 바울이 편지를 쓰는 중요한 이유 하나를 인지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부터 소위 ‘기독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창조주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시고, 모든 것의 시작이시며, 부활의 첫 시작이 되신 분이며 왕 중의 왕 이신 분입니다. 이제 19절에 와서는 그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게 거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고 자세하게 예수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오신 여러분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수님을 설명했다는 것은 이런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9절에 바울은 에바브로를 통해 골로새교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바울로 기도하게 하는 내용이었고 골로새서를 써야만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시대에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잘못된 신앙이나 거짓정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영지주의’입니다. 그리고 *πλήρωμα(플레로마)* 가 영지주의에서 갖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지주의에서 ‘충만’이라는 것은 신적 존재들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충만’은 ‘최고의 신’을 의미하고 신적 존재들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이 ‘충만’으로부터 방출되어 나온 것이 하위 신의 개념이 *αἰών(아이온)* 입니다.
영지주의적 개념에서 예수님은 플레로마로부터 방출된 아이온의 개념으로 봅니다. 또한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물질세계는 하등 하고 영적인 세계를 월등하고 선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등하고 열등한 존재나 혹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정도로 봅니다.
당시에 그런 영지주의적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다는 것을 부정했고 그 결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의미도 희석해 버렸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본다면 19절의 문장에 왜 ‘충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고 의미가 이해가 됩니다.
조금 어렵고 긴 글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완전한 거룩, 신성, 완전함이 충만하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이런 의미도 됩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겪고 있는 결핍은 무엇입니까?
2. 예수님으로 충분합니다는 의미가 여러분의 결핍에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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