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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골로새서

골로새서 2:8~10 a

by 기대어 보기를 2025. 5. 15.

[골2:8-10]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로새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미혹되지 않고 분별할 수 있기를 원하는 권면의 내용입니다. 당시에 교회 공동체 안에 ‘철학’과 ‘헛된 속임수’가 들어오고 그것이 신앙의 혼란을 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헛된 속임수는 모르겠지만 ‘철학’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도 언급하고 있는데 ’사람의 전통‘이란 *παράδοσις(파라도시스)* 즉,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는 또는 전해 지는 교훈과 계명, 이야기들을 말하고 ’세상의 초등 학문‘이란 *στοιχεῖον(스토이케이온)* 으로 원리와 기초 즉, 세상의 원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철학이란 *φιλοσοφία(필로소피아)* 라는 단어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철학이란 사람과 세계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어떤 원리가 있으며, 우리는 누구이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래서 철학 안에는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이를 통해 폭넓은 차원의 사고와 자기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철학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 같다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은 분명 우리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파민 중독‘과 같은 현상에 물들어가는 지금 이 시대에 철학이 주는 사유하는 힘과 그 결과를 통한 삶의 성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는 다른 길을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본다면 철학은 철저하게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경험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헛된 속임수‘처럼 그리스도인을 속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교회 공동체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이원론,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스토아주의, 반면에 인간의 쾌락을 강조하며 신은 세상에 관심이 없다고 보는 에피쿠로스주의, 또 철학적 사고 자체가 모순이며 주관적인 것일 뿐이라 주장했던 회의주의 그리고 위에서 계속 언급했었던 영지주의와 ’궤변‘이라고 말해야 할 내용들을 이야기했던 사람들 등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철학은 신앙에 해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철학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나쁘지 않고 필요한 학문입니다. 

사실은 저 보다 바울이 아마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철학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철학적 사고와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의 고대 철학의 중심지인 아테네에서 기독교를 변증 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6~34절) 

그 사역에서 어느 정도 성과 즉, 믿는 사람들이 생겼고 호기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고 복음이 거절당하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철학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했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철학적 사고는 필요합니다. 우리는 철학적 사로를 통해 삶을 더 깊이 있게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성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철저하게 사람의 이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철학에 대해서 아주 얄팍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철학은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없고 십자가의 은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기록된 예수님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충만하여졌다는 것은 사람의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은 앞에서 바울이 기록한 내용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23절 말씀을 천천히 그리고 한 번에 읽으십시오. 철학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어 신앙이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믿어지는 것은 여러분 안에서 시작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듣고 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여러분이 심취했던 세상의 학문이 있습니까? 그것과 신앙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었습니까?
2. 믿음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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