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골로새서

골로새서 3:15~17 a

by 기대어 보기를 2025. 6. 4.

[골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강은 *εἰρήνη(에이레네)* 라는 단어로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장하게하라는 말도 *βραβεύω(브라뷰오)* 라는 동사로 ‘지배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우리 마음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평강’은 히브리어로 *שָׁלוֹם(샬롬)* 입니다. 아마 이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평화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는 조금 더 의미가 풍성합니다. 온전하다, 충분하다, 안전하다는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평강이라는 말, 평화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과 몸이 안정되고, 삶의 어려움이나 위험이 없이 안전하고, 모든 것들이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럼 이제 스스로를 살펴봅시다. 여러분의 어제는 평화로웠습니까? 여러분의 지금은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안전하며 모든 것들이 충분하십니까?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삶의 행적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강, 평화, 화평’이라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쳤고 끊임없이 사역을 하셨고 사람들의 미움도, 모함도, 배척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나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시면 그것을 못 알아듣는 제자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떠나버리는 사람들,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에 어떤 평화가 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화로웠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의 사역을 마치고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던 시간들, 밤중에 배를 타고 이동하시면서 잠을 청하시는 모습을 볼 때 그 순간이 평화로운 순간이었다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는 그런 이미지가 익숙합니다. 고요해야 하고 간섭받지 않아야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에서 그런 의미의 평화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순간들은 고되고 힘든 삶의 연속성 사이에 있는 잠깐의 시간들 뿐입니다. 곧 해가 뜨면, 곧 바람이 불면 그런 평화는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평강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8장 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안하냐?”라고 묻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χαίρω(카이로)* 라는 동사의 현재 명령법 2인칭 복수 형태인 *χαῖρετε(카이레테)* 를 ‘평안하냐?’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 표현은 고대의 인사로 ‘안녕!‘ 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기쁘냐?‘라는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할 때 ‘기뻐하라’로 번역된 단어가 *χαῖρετε* 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8장 9절의 말씀은 번역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말에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밤에 별 탈 없이 잘 자고 일어났느냐는 의미의 인사입니다. 그런 의미로 ”평안하십니까? “라고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번역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무엇일까요?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리신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결코 평화나 화평과는 상관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찾아가 건넨 인사가 “평안하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우리에게 익숙한 평화로움의 상태, 모든 것이 완벽하고, 충분하고, 안전한 상태의 지속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었던 제자들처럼 우리의 삶은 많은 문제와 부족함이 계속되지만 그런 순간들 속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영적승리 안에 있는 평안입니다. 

세상에는 지더라도 주의 편에 서 있거나 주와 함께 죽을지라도 그것이 주와 함께 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찾아오는 내면의 안심과 기쁨이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 평강에 여러분의 감정을 맡겨 보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지금 여러분에게 있는 걱정거리는 무엇입니까?
2. 그 걱정거리에 대해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마음은 무엇입니까?

반응형

'묵상 > 골로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로새서 3:15~17 b  (0) 2025.06.06
골로새서 - 잠시 멈춰서서  (2) 2025.06.05
골로새서 3:14  (2) 2025.06.03
골로새서 3:13  (0) 2025.06.02
골로새서 3:12  (1) 2025.05.31

댓글